우리세대의 감성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감정의 원천과 현실의 감각 사이의 괴리감에 대하여...

by 김형범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뒤흔든 장면 하나쯤은 갖고 살아갑니다. 특히 스무 살이 되기 전, 아직 세상을 잘 몰랐을 때 마주한 감정은 오래도록 남습니다. 그 시절의 감동은 순수했고, 그래서 더 쉽게 기준이 됩니다. 무엇을 좋다고 느끼는가, 어떤 장면에 마음이 흔들리는가 하는 것들은 그 시기의 기억을 바탕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극장에서 봤던 태권 브이는 지금까지도 제 안에 남아 있는 인상적인 상징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느꼈던 감동은 무척 진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의심 없이 '좋은 기억'으로 간직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서, 그 감정이 모두에게 똑같이 공유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됩니다. 감정은 원래 개인적인 것이지만, 오래된 기억일수록 당연한 것으로 착각되기 쉽습니다.


최근 광복절 전야제에서 태권 브이를 무대 위에 다시 등장시키겠다는 기획이 발표되었을 때, 저는 처음엔 반가웠지만 금세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왜 익숙하고 좋았던 것이 이토록 낯설게 느껴졌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제 안에 남아 있는 그 감정이, 이미 지금의 시대와는 다른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기획자는 아마도 자신의 감정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감동이었다면, 지금도 감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겠지요. 그러나 그 감정이 실현될 수 있는 위치에서, 그것을 공적 상징으로 전면에 세우는 순간, 감정은 구조가 됩니다. 그리고 구조는 힘을 갖습니다. 감정은 그 자체로 순수하더라도, 반복되고 제도화되면 권력이 됩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감정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려 할 때,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아니라 ‘지시’로 읽힐 수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거와 다릅니다. 이제는 일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문화적 자신감을 가진 나라이고, K-팝, 드라마, 웹툰, 영화,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가 세계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감정의 언어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금의 세대는 새로운 감정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과거의 감정을 지금도 중심에 놓고 공감을 요구하게 되면, 그 감정은 소통이 아니라 단절을 만들게 됩니다.


젊은 세대는 태권 브이를 잘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감동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감정의 리듬은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다른 감정을 외면하거나 주변화하는 구조입니다. 과거의 감정을 ‘정답’처럼 놓고, 거기에 닿지 않는 감정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여긴다면, 새로운 감정은 자리를 잃고 말게 됩니다.


저는 그 감정을 이해합니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아왔고, 그 감정을 품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시대와 함께 갱신하지 못할 때, 그것은 결국 기억의 기득권이 됩니다. 공감을 만들기보다는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은 세대를 가르는 경계가 됩니다.


감정은 언제나 새롭게 번역되어야 합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감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예전의 감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정을 수용하고, 그것이 중심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제 왜 우리가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지, 문화적으로 어떤 변화를 이미 이뤄냈는지, 그리고 그래서 어떤 새로운 상징이 필요한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감정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다름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독립을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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