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이어주는 강력한 문화적 요소는 무엇일까?
문화는 언제나 한 세대의 감정과 호흡을 같이합니다. 감정은 변하고, 그것을 담아내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예전처럼’이라는 말을 쉽게 꺼냅니다. 과거의 감정이 진짜였기에, 지금도 그 감정이 먹힐 것이라 믿는 겁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때로 낡은 감정의 권력이 됩니다. 그리고 그 권력은, 세대를 잇는 다리가 아니라 벽이 되곤 합니다.
최근 광복절 전야제에서 태권 브이를 다시 전면에 내세운 기획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것은 추억을 환기시키려는 따뜻한 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대 흐름과 감정의 언어는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과거를 부러워해야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세계 속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증명해왔습니다. K-팝의 전 세계적 성공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고, 영화와 드라마, 웹툰과 게임도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축이 되었습니다. BTS의 메시지, 오징어게임의 상징, 블랙핑크의 이미지 전략은 일본을 모방하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감각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유산에 기대지 않아도, 우리의 상징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떤 기획은 과거의 감정에서 출발하고, 그 감정을 대중 전체의 공통 기억으로 착각합니다. 물론 한 사람의 추억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감정이 공적인 행사나 상징으로 사용될 때는, 그것이 지금 세대의 감각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감동은 공유될 때에만 감동입니다. 기억은 나눌 때 비로소 현재가 됩니다.
이제는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상징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이들은 태권 브이를 모릅니다. 기억도 없고 감정의 뿌리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감정의 흐름이 있고, 다른 언어가 있습니다. 그 언어를 억누르면서 과거의 감정만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문화적 권유가 아니라 강요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강요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획이란 결국 권력의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기획의 자리에 있고, 감정을 자원으로 삼아 구조를 만든다면, 그것은 공감을 가장한 기득권의 재생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구조를 인식하지 못한 채 감정을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지금의 시대에 대한 무감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일본과의 문화적 비교에서 열등감을 벗어난 지 오래입니다. 과거처럼 따라가는 문화가 아니라, 이제는 세계가 바라보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과거의 상징을 기념비처럼 다시 꺼내 드는 행위가, 역설적으로 지금의 자신감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문화는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내가 기억하는 감동’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지금 누가 무엇을 보고 감동하는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물음에 응답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기획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변했습니다. 기억은 여전히 소중하지만, 기억이 지금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갱신해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상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상징은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다음 걸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