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와 ‘되면 한다’를 넘어서

말로 살아가는 시대의 말장난

by 김형범

누군가는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되면 한다"고 말하죠. 두 문장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전자는 어떤 일이든 내가 먼저 행동하면 성과가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후자는 반대로 상황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내가 움직인다는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둘 다 인생의 방식이자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 말들이 하나의 말장난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요? 아니면 실제 삶에서는 이 말들처럼 선명한 인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생각해 보면, ‘하면 된다’는 말은 한때 한국 사회를 움직였던 마법 같은 주문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자신을 다잡기 위해 붙들었던 생존의 언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말은 동시에 실패했을 때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는 죄책감을 동반합니다. 노력했지만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잔인한 문장이기도 합니다.


‘되면 한다’는 말은 조금 더 여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책임을 유예하는 태도일 수 있습니다. 현실이 바뀌어야만 자신이 움직이겠다는 이 말은 마치 세상이 먼저 변해야 내가 움직일 수 있다는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평생 ‘조건’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 두 문장을 곱씹으며 드는 생각은 결국, 이 모든 말이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늘 결과를 원하고, 그것을 통해 나의 행동을 증명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계산처럼 흘러가지 않습니다. 내가 행동한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결과가 오는 것도 아니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지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두 문장을 넘어선 제3의 태도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건 바로, ‘한다’는 것이 존재의 방식이라는 관점입니다. 결과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말에 기대지 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된다’는 것은 그저 나의 지향점일 뿐, 그것이 도달해야 할 결승선은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한다’와 ‘된다’를 연결지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둘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결과는 그저 여러 갈래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한다’는 존재의 선언으로, ‘된다’는 방향성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우리가 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


삶은 공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 순간 선택하고 실천하며 살아내는 이야기입니다.

말이 아니라 행위로 증명되는 삶.

그것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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