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에서 마오쩌둥까지, ‘기억의 삭제’와 권력의 욕망
문명을 이루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은 방대한 문화를 품은 채 오랫동안 아시아 문명의 중심으로 자리해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은 스스로 자신의 문화적 기반을 수차례 무너뜨리고 지워왔다. 그것은 단순한 쇠퇴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파괴였다. 문화는 그 사회의 기억이며, 기억은 곧 권력과 통제의 영역이기도 하다.
중국 문화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대적인 문화 리셋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다.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생매장했던 이 사건은 단순한 검열이 아니라, ‘지금 이전의 사고방식은 모두 틀렸다’는 선언이자,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위에서 강제로 씌우는 폭력이었다. 유학을 포함한 다양한 사상과 역사적 텍스트를 제거함으로써, 진나라는 자기 시대를 ‘기점’으로 삼으려 했다. 왕조의 시작은 역사적인 ‘출발선’을 새로 긋는 일이었고, 그 출발선 이전의 흔적은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난 뒤, 또 한 번의 대대적인 ‘문화 리셋’이 벌어진다. 바로 문화대혁명이다. 마오쩌둥은 기존의 유산을 낡은 사상으로 규정하고, 홍위병을 앞세워 전통을 무너뜨렸다. 유교 사당이 부서지고, 고전이 불태워졌으며, 명청대 회화와 도자기, 서예와 연극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되었다. 궁극적으로는 ‘전통’이라는 단어 자체가 혁명과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를 잊고 현재의 구호를 외쳐야 했다. 모든 예술은 선전이 되었고, 모든 기억은 정치화되었다.
이런 문화적 리셋은 단지 추상적인 유산의 소실에 그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삶의 방식과 전통 속 기술까지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만한전석이다. 청나라 황실에서 발전한 이 잔치 문화는 만주족과 한족의 조화를 상징하는 상징적 식탁이었으나, 청나라가 멸망하며 황실의 궁중 요리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요리법은 일반에 전수되기도 전에 소실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문화대혁명은 이 궁중 문화를 낡은 봉건의 유산으로 몰아붙였고, 결국 만한전석은 역사 속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오늘날 ‘복원된’ 만한전석은 대부분 실제 전통과는 거리가 먼 상업적 복제물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반복되는 리셋이 단순한 우연이나 혼란의 결과가 아니라, 상당히 의도적이라는 점이다. 문화는 국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인 동시에, 민중의 자율성과 연계되기 쉽다. 왕조가 바뀌거나 체제가 전환될 때마다 구질서의 흔적은 불온한 과거가 된다. 그래서 중국의 정치 권력은 늘 새로운 질서를 강제하기 위해 과거를 ‘제거’해왔다. 마치 이전 시대의 기억이 존재하는 한, 새로운 질서는 완전해질 수 없다는 듯이.
이와 같은 태도는 다른 문화권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유럽은 르네상스를 통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을 ‘발굴’하고 ‘복원’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장했다. 반면, 중국은 스스로의 고전을 되살리기보다는 지우고, 반복해서 현재에 맞게 새로 쓰기를 택했다. 바로 이 점이 중국 문화의 역동성과 불안정성, 그리고 정치와 문화 사이의 긴장을 설명해주는 핵심 열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에서 금속활자 인쇄가 남아 있지 않은 이유도 이해된다. 최초의 금속활자가 한반도에서 등장한 것은, 중국이 그 기술을 지속적으로 계승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리셋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화는 기록과 축적을 통해 발전하는데, 그것이 주기적으로 삭제된다면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전승은 단절된다.
결국, 중국의 문화 리셋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미래를 통제하려는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잊게 만들고, 새로 쓰게 만들고, 다시 외우게 만든다. 그러한 반복 속에서 중국의 문화는 강력한 국가 체제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굴러간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문화는 오래되었으면서도 낯설고, 거대하면서도 균열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균열 속에, 우리는 ‘기억의 정치’라는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