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 속에서 더 깊은 현실을 본 철학적 시선
사람들은 흔히 예술을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철학자들은 예술이 반드시 사실만을 재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예술이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은 거짓, 즉 허구를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러한 생각을 대표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우리는 예술을 가지고서만 진실을 견딜 수 있다”고 말하며, 예술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허구와 상징을 통해 그 이면의 의미를 보여준다고 보았습니다.
니체에게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많았습니다. 삶에는 고통과 불합리, 모순이 가득했고, 이를 직시하면 인간은 쉽게 절망에 빠집니다. 그러나 예술은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옮기지 않고, 변형하고, 가공하며, 때로는 과장과 왜곡을 통해 그 본질을 드러냅니다. 그는 그리스 비극을 예로 들며, 무대 위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그 속에서 관객은 인간의 운명과 한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느낀다고 설명했습니다. 비극 속 영웅들의 몰락과 선택은 사실과 다르더라도, 그것이 전달하는 감정과 깨달음은 현실의 어떤 장면보다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예술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영화, 소설, 연극, 심지어 광고까지도 실제 사건이 아니더라도 인물의 감정과 갈등,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허구의 전체주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지만, 독자는 그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서 자유가 억압될 위험성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면서도 극적인 장면 구성과 허구적 요소를 더해 관객이 홀로코스트의 참혹함과 인간성의 빛을 강렬하게 체험하게 만듭니다. 픽션이지만, 그 안의 감정과 메시지는 역사적 사실이 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예술이 거짓을 통해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는 진실이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눈에 보이는 정보지만, 진실은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 가치, 인간의 경험과 해석을 포함합니다. 예술은 이 숨겨진 층위에 다가가기 위해 현실을 변형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감정적으로 몰입하며 자신의 경험과 연결시키고, 그 안에서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진실을 발견합니다. 이런 경험은 때로 실제 사건을 목격하는 것보다 더 강렬하고 오래 남습니다.
결국 예술이 거짓을 다루는 이유는 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진실을 더 깊이, 더 강하게 느끼게 하기 위함입니다. 니체가 말했듯,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술은 거짓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 가면 뒤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을 비춥니다. 진실은 때로 직접 마주하기보다, 허구라는 우회로를 통해 더 뚜렷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철학적 시선은 우리에게 예술을 단순한 꾸밈이나 장식으로 보지 말고, 진실로 향하는 또 하나의 길로 이해하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