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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번 마을버스가 지도에서 사라진 이유

오버투어리즘에 맞선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조용한 저항

by 김형범

바르셀로나의 그라시아 지구에서 구엘 공원까지 오르는 길은 짧지만 경사가 심합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대표적인 건축물과 예술적 감각이 살아 있는 장소로, 전 세계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명소입니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은 언덕을 오르기 위해 대중교통을 선택했고, 그중 가장 편리하고 인기 있는 노선이 바로 116번 마을버스였습니다. 원래는 지역 주민들이 장을 보거나 아이를 등하교 시키는 등 생활에 필요한 발로 이용하던 버스였으나, 구글 지도에 이 노선이 상세히 표시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관광객들은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이동 계획을 세웠고, 116번 버스는 ‘구엘 공원까지 가는 가장 짧은 길’로 소개되었습니다. 소셜미디어와 여행 후기 사이트를 통해 이 노선의 편리함이 퍼지자, 작은 마을버스는 연일 만원 상태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주민들이 버스를 타지 못하는 상황이 일상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유모차를 끌고 기다리는 부모, 장을 본 노인, 언덕 위 학교로 가야 하는 아이들이 버스를 타지 못하고 다음 차를 기다리거나 다른 경로를 찾아야 했습니다. 버스 내부는 짐을 든 관광객과 셀카를 찍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정작 원래 이 노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시민들의 불만은 여러 해 동안 이어졌고, 시의회는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물리적으로 노선을 폐지하면 주민들도 불편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 대신 시의회는 116번 버스 노선을 구글 지도에서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구글 대변인도 “시의회의 공식 요청이 있어야 노선을 지도에서 삭제할 수 있다”고 확인하며, 이 결정이 단순한 비공식 조치가 아닌 제도적인 절차를 거쳤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버스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운행되지만, 구글 지도에는 더 이상 116번 노선이 표시되지 않습니다. 관광객들은 검색을 통해 이 노선을 쉽게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이는 관광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줄이는 효과를 냈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삭제’는 물리적 장벽을 세우지 않고도 유입을 조절하는 현대적인 대응 방식이었습니다. 주민들에게는 숨 쉴 여유를, 버스 본래의 기능에는 회복의 기회를 제공한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시의원 산체스의 풍자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다음은 구엘 공원을 구글맵에서 삭제하는 일이겠군요.”


겉으로는 웃음을 자아내는 농담 같지만, 이 말은 디지털 플랫폼이 도시의 운명과 이미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여행자는 발로 걷기 전에 손가락으로 검색합니다. 구글 지도, 인스타그램, 티켓 예매 플랫폼이 소개하는 장소만이 사실상 ‘존재하는 공간’이 됩니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은 곧 ‘없애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116번 마을버스 사건은 오버투어리즘에 맞서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줍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담장이나 복잡한 규제를 세우지 않고, 정보의 흐름을 제어하는 선택. 관광객의 이동을 조용하지만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방식. 이것이 바로 116번 마을버스가 지도에서 사라진 이유이며, 앞으로 다른 도시들이 참고할 만한 디지털 시대의 해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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