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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없다] 리뷰

왜 박찬욱은 불편한가?

by 김형범

우리는 지금, 가장 한국적인 감독의 이름을 들으면서도 어딘가 이방인 같은 기분을 느끼는 독특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해외 평단에서 연일 찬사를 받고, 명실상부한 '초국가적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우리의 자랑이지만, 정작 그의 신작들이 국내 관객에게는 미묘한 거리감과 호불호로 다가오는 현상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그의 최신작인 '어쩔수가없다'는 이러한 간극이 응축된 결과물처럼 보입니다. '아가씨' 이후로 더욱 명확해진 그의 예술적 행보, 즉 국내 관객의 익숙한 감수성을 넘어 세계적 보편성과 형식미를 추구하는 방식이 어떤 논란과 매력을 동시에 낳고 있는지, 우리는 이 영화를 다섯 가지 핵심적인 시선으로 해부해보고자 합니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렌즈는 장르의 변주입니다. '어쩔수가없다'는 겉으로는 냉소적이고 기이한 블랙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처절한 비극성이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감독은 인물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극도로 이성적이고 건조한 유머로 처리하는데, 이는 관객에게 쉽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인물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보여주는 황당한 행동이나 대사는 웃음을 유발하기보다는, 그들의 고통이 너무나 심각해서 결국 희화화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며 비극의 무게를 역설적으로 증폭시킵니다. 이처럼 아이러니를 통해 정서를 통제하는 방식은 관객이 심리적으로 더욱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감독의 독특한 서명입니다.


이 냉소적인 거리감은 두 번째 시선인 미학적 통제를 통해 더욱 강화됩니다. 박찬욱 감독에게 미장센은 서사를 보조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언어입니다. '어쩔수가없다' 속 부유한 인물들의 공간은 완벽하게 정돈되고 세련되었지만, 이 완벽함은 인물들의 정신적, 윤리적 붕괴와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그들을 옥죄는 심리적 감옥으로 작용합니다. 정교한 구도와 색채의 대비, 그리고 인물들을 프레임 안에 가두는 듯한 카메라 워크는 보는 이에게 시각적 쾌감을 주지만, 동시에 불안하고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이처럼 형식적 완결성을 통해 인물의 내면적 불안을 시청각적으로 해부하는 방식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매력이자, 동시에 관객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는 지점이 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시선은 박찬욱 영화의 핵심 문법인 '유사성의 데자뷔'입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과 그가 대면하거나 제거해야 하는 대상들 사이에 기묘하리만큼 깊은 대칭 구조를 층층이 쌓아 올립니다. 주인공이 자신이 처단해야 할 대상이 불륜으로 배신당했을 때 마치 자신의 고통처럼 아파하는 모습에서 시작해, 이 감정은 곧 자신의 아내와 직장 상사의 관계를 의심하는 것으로 전이되죠. 나아가 같은 실직자 처지인 인물을 살해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실상 같은 운명을 공유하는 거울상임을 섬뜩하게 드러냅니다. 심지어 비밀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아내의 모습마저, 결국 마지막 살인을 행하려는 주인공의 파국적인 궤적과 섬뜩하게 유사하게 겹쳐 보입니다. 이러한 반복적 대칭 구조는 단순한 자기 복제를 넘어섭니다. 이는 감독이 형식적 성취를 새로운 주제와 치밀하게 결합하고, 등장인물들의 윤리적 위치를 끊임없이 뒤섞기 위해 계산해 낸 집요한 대본 작업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인물들의 운명과 심리가 겹쳐지는 복잡다단한 설계는, 영화에 익숙지 않은 관객에게는 때때로 맥락 없는 과잉된 장치나 난해함으로 느껴져 호불호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미학적 장치들이 집중적으로 활용되는 곳은 네 번째 시선인 윤리적 모호성의 영역입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인물들은 불가피한 상황과 욕망의 압력 속에서 '어쩔 수가 없는' 파멸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행위는 관객의 도덕적 잣대로는 쉽게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지점에 놓여있습니다. 감독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인물들의 모순된 욕망과 딜레마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관객에게 윤리적 판단을 유보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수도, 전적으로 옹호할 수도 없는 혼란 속에서 인간 본성의 원초적인 모습을 목도하게 되며, 이 불편함이야말로 박찬욱 영화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힘을 발휘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시선은 앞서 언급된 모든 요소가 귀결되는 초국가적 시선이 만들어낸 국내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감입니다. '어쩔수가없다'가 다루는 중산층의 몰락과 불안이라는 주제는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기에 해외 평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제시하는 '몰락하는 계층'의 라이프스타일이나 배경은 국내 대다수 관객이 체감하는 현실적 불안과는 동떨어진, 어딘가 이국적인 초국가적 중산층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한국 관객에게는 현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보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심리적 장벽이 먼저 다가왔고, 이는 필연적으로 감정 이입의 실패와 '불호'라는 냉정한 반응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박찬욱 감독이 '어쩔수가없다'를 통해 보여준 예술적 시도는 더 이상 국내 관객의 익숙한 입맛에 맞추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그는 '아가씨' 이후로 명확하게 세계적 대중과의 대화법을 선택했으며, 그의 영화가 국내에서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은 그가 한국이라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초국가적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음을 반증합니다. 그는 늘 기성 관념과 도덕적 안전지대를 흔드는 반골 기질을 보여주었고,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때로는 불편함과 논란을 안겨줄지언정, 그의 탁월한 형식미와 끊임없는 예술적 도발은 한국 영화의 지평을 세계로 확장하는 데 절대적인 보배와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그의 영화를 불편해하고 논쟁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시각을 넓히고 예술에 대한 깊이를 더하는 가치 있는 행위임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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