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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봉투 백이 완판되는 이유

럭셔리 대중화에 맞선 아이러니 소비 심리 분석

by 김형범

최근 몇 년 사이 명품 브랜드들은 상식을 거부하는 듯한 물건들을 연달아 내놓으며 세상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바로 '쓰레기 봉투 백'일 것입니다. 평범한 비닐 쓰레기 봉투의 모양을 본뜬 이 가방은 1,790달러, 우리 돈으로 20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출시되었고, 심지어 출시 몇 주 만에 완판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샤워 후 몸을 닦는 타월을 허리에 두른 듯한 '타월 스커트'는 100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표를 달았으며 , 스위스 치즈 구멍을 연상시키는 프라다 스웨터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과 조롱을 샀습니다. 이처럼 '이상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명품들이 성공적으로 팔려나가는 현상 뒤에는, 단순히 부를 과시하려는 차원을 넘어선 훨씬 복잡하고 교묘한 소비자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소비 심리를 이해하려면, 럭셔리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먼저 짚어보아야 합니다. 수십 년 전, 명품은 극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고급 시계나 핸드백과 같은 전통적인 명품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지위의 상징이었던 물건이 대중화되자, 최상위 소비자들은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특별함'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문제에 직면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가질 때, 명품의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부유층은 대중과 자신을 분리하고, '나는 다르다'는 특권 의식 을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신호는 누구나 쉽게 해독할 수 있는 '시끄러운(Loud)' 로고가 아닌, 소수의 지식 있는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조용한(Quiet)' 코드로 진화하게 됩니다.


쓰레기 봉투 백이나 타월 스커트 같은 '이상한 명품'은 이러한 지위 신호의 '코딩화'가 낳은 극단적인 결과물입니다. 이 물건들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 소비(Ironic Consumption)의 심리를 대변합니다. 구매자는 이 제품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는지 스스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구매를 결정하는 행위를 통해, "나는 이 물건의 조롱거리가 될 만한 의미까지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유머 감각과 경제적 여유를 동시에 가졌다"는 이중적인 엘리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쓰레기 봉투 백을 메고 다니는 소비자는 "나도 이게 쓰레기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이 가방의 진정한 가치이자 나의 유머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아이러니 소비는 명품 구매에 뒤따를 수 있는 '사치스럽다'는 비난이나 비판을 완화하는 '부정 방지 보험' 역할까지 수행합니다.


사실,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비기능적인 물건을 사용하는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세와 근세 유럽에는 신분에 따라 착용할 수 있는 의복과 사치품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사치 금지법(Sumptuary Laws)이 존재했습니다. 당시 귀족 계층만이 착용할 수 있었던, 금실이나 은실로 장식되어 기능적 효용이 없는 베일이나 특정 모피는 신분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법은 부유한 평민이 귀족을 모방하는 것을 막고 사회 계층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으나, 역설적으로 사치품에 대한 욕구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현대의 이상한 명품 소비는 규제가 없는 시대에, 부유층이 자발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물건에 초고가를 부여하고, 미학적 규범을 전복함으로써 미묘하게 계층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식인 것입니다.


쓰레기 봉투 백이 완판되는 이유는 그 물건의 가치가 가죽의 품질이나 실용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매자가 얻는 문화적 자본과 독점적인 지위 신호에 있습니다. 럭셔리가 대중화될수록, 최상위 소비자는 남들이 해독할 수 없는 코드를 통해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심리를 더욱 은밀하고 역설적인 방식으로 발현시키고 있으며, 이 이상하고 비싼 물건들은 그 욕구가 만들어낸 가장 기발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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