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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시청률이 만든 뜻밖의 대기업

인질극 생중계 속에서 탄생한 일본 국민 음식 이야기

by 김형범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접하는 수많은 상품 중에는, 그 성공의 배경에 드라마틱하거나 혹은 비극적인 역사가 숨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도무지 연결고리를 찾기 힘든 끔찍한 사건과 하나의 제품이 만나 한 기업을 단숨에 대기업의 반열에 올려놓는 기적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지금부터는 1970년대 초 일본을 뒤흔든 한 인질극이 어떻게 전국민의 식탁을 바꾼 제품의 역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972년 2월, 일본 열도는 나가노현의 외딴 산장을 향해 온 국민의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사회의 혼란을 상징하던 무장단체, 연합 적군 소속의 범인들이 이곳에서 민간인 인질을 잡고 경찰과 극한의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아사마 산장 사건이라 불리는 이 인질극은 단순한 인질극을 넘어선 비극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산악 베이스에서 동료들을 살해하는 끔찍한 내부 숙청을 저지르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최후의 도피처로 이곳에 숨어든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인질의 생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범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산장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건설되어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었고, 혹독한 영하의 겨울 날씨와 험난한 지형은 경찰의 진압 작전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인질의 생명이 걸린 만큼 성급한 진입은 불가능했고, 대치는 무려 열흘 동안이나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안과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아사미산장사건.PNG

이 사건의 대치 상황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주요 방송국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으며, 이 뉴스의 시청률은 가히 경이로운 90%에 육박했습니다. 그야말로 거의 모든 일본 국민이 텔레비전을 통해 이 비상사태의 모든 순간을 숨죽이며 공유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경찰은 인명 피해를 줄이고자 인도적인 설득을 먼저 시도했습니다. 심지어 범인의 어머니를 현장으로 데려와 간절한 목소리로 항복을 호소하게 했으나, 범인들은 오히려 경찰이 부모의 정을 이용한다며 총격을 가하는 등 더욱 극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대원들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강제 진압을 결정하게 됩니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아 산장 주변을 얼어붙게 만드는가 하면, 크레인(철구)까지 동원하여 산장의 벽을 부수는 파격적인 대규모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이 치열한 전투 끝에 인질은 무사히 구출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진압 과정에서 경찰관 두 명과 민간인 한 명이 순직하는 비극적인 희생이 발생했습니다. 이처럼 긴박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던 경찰 기동대원들에게는 극한의 추위와 피로 외에도 또 다른 고난이 있었습니다. 바로 식사 문제였습니다. 매일 보급되는 도시락과 주먹밥은 혹한의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금세 꽁꽁 얼어붙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지자, 경찰 지휘부는 고심 끝에 당시 대중에게는 아직 생소했던 새로운 형태의 식품을 대원들에게 보급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닛신(Nissin)의 컵라면이었습니다.


당시 컵라면은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반 대중에게는 '비싼 가격에 비해 생소하고 복잡한 조리 과정을 가진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해 아직 시장에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스크린 속에서, 경찰 대원들은 차가운 눈발을 맞으며 간편하게 뜨거운 물만 부어 불과 몇 분 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끔찍한 인질극 속에서 잠시나마 몸을 녹이는 대원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겹쳐지며, 시청자들에게 컵라면이 '극한 상황에서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간편하고 실용적인 비상식량'이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각인시켰습니다. 마치 경찰들이 직접 시연하는 것과 같은 이 즉각적인 광고 효과는 수백억 원을 들여도 얻을 수 없는 최고의 마케팅 기회였습니다.


열흘간의 긴 대치는 경찰의 강제 진압 성공으로 막을 내리며 비극적인 막을 내렸지만, 이 사건은 일본 사회와 소비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국민들은 그 사건의 상징처럼 여겨진 컵라면을 너도나도 찾기 시작했고, 판매량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치솟았습니다. 아사마 산장 사건이라는 긴박하고 비극적인 역사의 순간이, 역설적으로 컵라면이라는 일상적인 제품이 국민적 인지도를 얻고 새로운 식문화를 여는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이로써 한 비극의 현장이 낳은 뜨거운 한 그릇의 컵라면은 일본인의 식탁을 영구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오늘날 우리가 편의점에서 쉽게 접하는 컵라면 역사의 시작은 이처럼 아이러니하고 극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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