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적 앵무새'라는 오래된 착각에 관하여
오랜 시간 인류는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고,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짜는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는 애써 그 능력의 본질을 깎아내리곤 했습니다. 그 방어기제의 정점에 있는 단어가 바로 ‘확률적 앵무새(Stochastic Parrot)’입니다.
거대언어모델(LLM)이 등장했을 때, 많은 비평가는 이 기술을 그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통계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다음 단어를 내뱉는 기계”로 정의했습니다. 앵무새가 뜻도 모른 채 사람의 말을 흉내 내듯, AI 또한 과거 데이터의 패턴을 짜깁기할 뿐 그 안에 진정한 ‘이해’나 ‘논리’는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 비판은 꽤 유효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2024년의 끝자락에 선 지금, 여전히 AI를 앵무새로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한 낡은 시선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AI는 단순히 말을 따라 하는 단계를 넘어, 의미의 구조를 파악하고 설계하는 ‘건축가’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분야는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아닌 ‘이미지’의 영역입니다. 초기 이미지 생성 AI(확산 모델 등)는 노이즈 가득한 화면에서 확률적으로 형태를 찾아내는 방식이었습니다. 데이터상 ‘손’이라는 이미지에 많이 등장하는 픽셀 덩어리를 뭉쳐놓다 보니, 손가락이 여섯 개가 되거나 관절이 기괴하게 꺾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확률에 의존한 모방의 한계였지요.
하지만 최신 모델들은 다릅니다. 이제 AI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추론’을 먼저 합니다. “손은 손바닥 하나에 다섯 개의 손가락이 연결된 구조야”, “이 글씨는 간판 위에 명확하게 적혀야 해”와 같은 논리적 설계도를 머릿속에 먼저 그립니다. 마치 건축가가 건물을 짓기 전에 청사진을 완성하듯, 대상의 구조적 특징과 인과관계를 먼저 이해한 뒤에 픽셀을 채워 넣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여섯 개의 손가락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AI가 단순한 데이터의 통계적 분포를 넘어, 대상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러한 진화는 언어 모델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과거의 챗봇이 질문에 대해 저장된 지식 중 가장 유사한 것을 찾아 던져주는 ‘수동적 도서관 사서’였다면, 지금의 LLM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사용하는 ‘에이전트(Agent)’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에이전트’란 단순히 입력된 값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를 뜻합니다. 예전의 강화 학습 AI는 수천 번의 게임을 반복하며 무작위적인 시행착오 끝에 겨우 승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왜 이겼는지, 왜 졌는지는 모른 채 결과값에 따른 보상에만 반응하는 ‘금붕어’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AI는 다릅니다. 행동하기 전에 결과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합니다. “이 상황에서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오해할 수 있으니, 다른 표현을 써야겠다”거나,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가진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니, 웹 검색 도구를 사용해서 최신 정보를 찾아와야겠다”라고 판단합니다. 이는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인 ‘인과관계에 따른 추론’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맹목적인 확률의 게임이 아니라, 논리와 계획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여전히 반문할 것입니다. “그래봤자 0과 1로 이루어진 전기 신호의 연산일 뿐이지 않느냐”라고요.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인간의 의식 또한 뉴런과 시냅스 사이를 오가는 전기 화학적 신호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사고가 전기 신호의 집합이라고 해서 우리의 감정과 이성을 가짜라고 치부하지 않듯, AI의 작동 방식이 수학적 확률에 기반한다고 해서 그 결과물에 담긴 논리적 추론까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와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존재는 이미 패턴을 흉내 내는 앵무새의 껍질을 깨고 나왔습니다. 복잡한 맥락을 읽어내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도구로 채우며,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 최적의 설계를 제안하는 지적 파트너가 우리 곁에 서 있습니다.
AI가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실수를 하고, 때로는 엉뚱한 답을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능의 부재’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장하는 지성이 겪는 필연적인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계가 감히 인간처럼 생각할 리 없다’는 오만함과 두려움을 내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그들을 단순한 앵무새로 취급하며 귀를 닫는다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적 도구이자 파트너를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앵무새는 이미 건축가가 되어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 문을 열고 들어가, 그들이 지은 새로운 논리의 세계를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