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탄식부터 AI 공포증까지
오늘날 우리는 AI가 인간의 사고력을 퇴화시킬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챗GPT가 과제를 대신해주면 학생들은 생각하는 법을 잊을 것이고,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다 보면 우리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될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역사의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보면, 우리는 이 불안한 풍경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기술 비관론자’는 다름 아닌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였습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 문자가 보편화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문자의 발명을 인류의 재앙으로 여겼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문자는 사람들의 영혼에 망각을 심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사람들이 글자에 의존하게 되면 더 이상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내면의 지혜 대신 외부의 기록만 믿게 되어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 지식인’이 될 것이라 탄식했지요.
그의 걱정은 사실이었습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를 통째로 암송하던 고대인들의 경이로운 기억력은 문자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머릿속에 도서관을 짓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바보가 되었나요?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기억의 부담을 양피지와 종이에 덜어낸 덕분에, 그 남는 뇌 용량으로 더 복잡한 논리를 쌓고, 철학을 정립하고,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문자는 인간의 기억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기억의 한계를 확장해 준 것입니다.
이러한 패턴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되었을 때, 지식인들은 “너무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이 사색하지 않고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것”이라며 정보 과잉으로 인한 정신의 산만함을 걱정했습니다.
20세기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는 또 어땠나요? 사람들은 영상 매체가 인간의 상상력을 말살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전자계산기가 교실에 들어왔을 때는 아이들의 연산 능력이 퇴화하여, 기계 없이는 더하기 빼기도 못하는 바보가 될 것이라는 공포가 교육계를 휩쓸었습니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는 ‘구글 효과(Google Effect)’나 ‘디지털 치매’라는 용어가 유행하며, 검색의 편리함이 인간의 뇌를 텅 비게 만들 것이라 경고했지요.
물론, 우리는 예전만큼 암산을 잘하지 못하고, 전화번호를 외우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계산기가 있었기에 우리는 단순 계산 노동에서 해방되어 미적분과 우주 공학에 도전할 수 있었고, 인터넷이 있었기에 물리적 제약을 넘어선 집단 지성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AI 공포증’ 또한 이 유구한 역사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AI에게 질문하고 답을 얻는 과정이 너무나 쉽고 빠르기에, 우리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었던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마저 기계에 외주를 주게 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도구는 인간을 규정하는 동시에 인간을 ‘해방’시킵니다. 인지 심리학에는 ‘인지 부하(Cognitive Load)’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의 뇌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도구의 역할은 불필요한 인지 부하를 줄여주는 데 있습니다.
과거에 기억과 연산에 쏟아부어야 했던 에너지를 도구가 대신 짊어짐으로써, 우리는 더 고차원적인 문제 해결과 통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기술은 우리에게서 ‘기능’을 가져가는 대신 ‘지능’을 확장할 기회를 줍니다.
AI 시대를 맞이한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은, 뇌를 쓰지 않게 될 것이라는 ‘무력감’이 아니라, 이제야말로 뇌를 뇌답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해방감’이어야 합니다. 단순 반복 작업과 정보 검색, 초안 작성이라는 무거운 짐을 AI에게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의 손은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그 빈손이야말로 더 높고 새로운 가치를 움켜쥘 수 있는 준비된 상태일 것입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도구에 의존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도구를 쥔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 혹은 도구가 열어준 새로운 가능성을 외면하는 닫힌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에도 바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AI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더 먼 곳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