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 힘멜이 대만 지하철에 나타난 이유

캐릭터의 내면을 코스프레하

by 김형범

우리는 종종 '이야기'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만화나 게임, 영화 속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보며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거나, 가상의 세계로 도피했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2024년 5월, 대만의 한 지하철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 편견을 보란 듯이 깨뜨렸다.

18fe713b5b21316e8.jpg 대만 힘멜좌라고 불리는 사나이

흉기를 든 괴한이 승객들을 위협하며 난동을 부리던 절체절명의 순간,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범인을 놓지 않고 제압한 한 남성이 있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자신의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담담하게 밝혔다.


"용사 힘멜이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가 언급한 '힘멜'은 일본 만화 《장송의 프리렌》에 등장하는 용사 캐릭터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인터뷰 자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의 옷을 입고 나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를 '오타쿠'라 불렀다. 하지만 이 뉴스에 달린 한 줄의 댓글은 그를 단순한 마니아가 아닌, 숭고한 정신의 실천가로 재정의했다.


"세상에는 캐릭터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코스프레하는 사람도 있다."


'코스프레(Costume Play)'는 본래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그 외형을 흉내 내는 놀이를 뜻한다. 겉모습이 얼마나 똑같은지, 가발의 색이나 칼의 디테일이 얼마나 정교한지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이 대만의 청년은 달랐다. 그는 힘멜의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힘멜의 '마음'을 입었다.


만화 속 힘멜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곤란한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두려움보다 타인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선한 마음'이 그의 가장 큰 무기다. 대만의 청년은 공포에 질린 지하철 안에서, 자신이 동경하던 그 캐릭터의 영혼을 현실로 불러냈다. 가상의 이야기가 현실의 육체를 빌려 사람을 구한 셈이다.


https://youtu.be/ctGAWV92QCw?si=tX0S2enxs0IXs7S3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으며 살아가는가.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소비하는 콘텐츠들이 실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여,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나오는 '행동의 레퍼런스'가 된다.


누군가는 멋진 슈트를 입고도 비겁하게 도망칠 수 있고, 누군가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입고도 영웅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걸치고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느냐다.

그 청년은 증명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야기는 결코 헛된 공상이 아니라고. 가짜 이야기도 진심으로 믿고 행동하는 순간, 그 무엇보다 강력한 진짜 현실이 된다고 말이다.


오늘 당신은 누구를 코스프레하고 있는가. 당신의 내면은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을 닮아 가고 있는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비자를 무시하다가 한여름에 에어컨까지 압류당한 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