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왜곡부터 노동의 상실까지, 우리가 '상식'이라 믿어온 것들의 이면
한 사회가 무너지는 과정은 단 한 번의 거대한 폭발보다는 소리 없이 진행되는 서서히 가라앉는 침몰에 가깝습니다. 그 침몰의 이면에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정교하게 파고드는 아홉 가지의 설계도가 존재합니다. 이 설계도는 고전 속의 악마들이 속삭였던 논리이지만, 놀랍게도 현대 사회가 ‘상식’이나 ‘트렌드’라고 부르는 것들과 그 궤를 같이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전략은 언어의 정의를 비트는 것입니다. 자유라는 숭고한 가치를 방종으로 치환하는 것이 그 출발점입니다. 진정한 자유에는 타인에 대한 책임과 자기 통제가 수반되지만, 악마는 책임 없는 쾌락을 자유라고 믿게 만듭니다. 인간이 신이나 도덕적 권위로부터 벗어나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을 해방이라 부르기 시작할 때, 그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끝없는 욕망에 결박된 노예가 됩니다. 스스로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가면서도 그것이 자유라고 확신하는 상태, 이것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기초적인 공사입니다.
이어지는 전략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내부에서부터 부식시키는 것입니다. 투표권과 의회라는 형식은 유지하되, 그 본질인 토론의 장을 증오와 선동의 용광로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른바 ‘가짜 민주주의’는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공동체를 둘로 쪼개어 서로를 ‘악’이라 부르게 만듭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사회를 지배할 때,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미워하느라 진짜 권력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분열은 경제적 영역으로도 확장되어 노동 없는 부의 환상을 심어줍니다. 땀 흘려 일하는 가치를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시키고, 오직 숫자 놀음과 투기만으로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거품 경제를 조성합니다. 실체가 없는 거품 속에서 사람들을 흥청망청하게 한 뒤, 일순간에 그 거품을 터뜨려 사회 전체를 공황으로 몰아넣는 방식은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고전적인 수법입니다.
동시에 악마는 공동체의 수직적 축인 역사를 파괴합니다. 과거를 지우고 노인을 혐오하게 만드는 전략은 사회를 뿌리 뽑힌 나무로 만듭니다. 옛것을 낡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고, 오랜 세월 축적된 지혜를 ‘꼰대의 잔소리’로 낙인찍게 유도합니다. 오직 개발과 속도만을 숭배하게 된 사회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쓰러지는 연약한 존재가 됩니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세대는 현재의 자극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극의 정점은 문화적 타락에서 완성됩니다. 고상한 예술과 진지한 성찰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자극적이며 외설적인 것들을 ‘쿨한 문화’로 포장하여 유행시킵니다. 무엇이 아름답고 추한지 구별하지 못하게 된 대중의 정신은 소음 가득한 축제 속에서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가장 지성적이어야 할 영역에서는 탁월함을 죽이는 하향 평준화가 진행됩니다.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질투심과 결합시켜, 뛰어난 재능이나 고결한 인격을 가진 자들을 끌어내리게 합니다. 교육 수준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누구도 남보다 앞서나가지 못하게 가두는 ‘바보들의 천국’에서는 그 어떤 위대한 사상도 저항의 의지도 싹틀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한 90%의 대중은 지배하기 가장 쉬운 가축이 됩니다. 여기에 빵을 미끼로 자유를 반납하게 만드는 제안이 더해집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라고 유혹하며, 경제적 풍요를 줄 테니 골치 아픈 양심과 자유를 내놓으라고 속삭입니다. 많은 이들이 기꺼이 그 거래에 응하며 스스로 사육장의 편안함을 선택하게 됩니다.
더욱 고도화된 전략은 개별적 악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악의 평범성’입니다. 살인과 파괴를 직접 손에 피 묻혀 할 필요 없이, 깨끗한 사무실에서 서류 한 장에 서명하는 것만으로 수천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관료제 시스템을 만듭니다. 그 안에서 개인은 “나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악은 이제 특별한 광기가 아니라 일상의 성실함으로 둔갑하여 사회 전체를 잠식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의 마지막 단추는 악마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악의 원인을 오직 사회 구조나 뇌의 생물학적 작용으로만 돌리게 하여 사람들이 방심하게 만듭니다. 악의 실체를 잊고 미신이라 치부할 때, 이 보이지 않는 논리는 침실과 학교, 의회 깊숙이 침투하여 모든 시나리오를 완성합니다.
이 아홉 가지 전략은 특정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혐오의 말들, 무분별한 쾌락의 찬미, 탁월함에 대한 냉소, 그리고 시스템 뒤에 숨은 무책임 속에 이미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공동체와 국가의 멸망은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이러한 논리를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가치를 뒤바꾼 언어를 당연하게 쓰고, 빵을 위해 양심을 파는 것을 합리적이라 부르며, 서로를 증오하는 정치에 열광할 때 악마의 시나리오는 성공적으로 상영되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이 전략들이 경고하는 것은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위협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가장 취약한 본성이 어떻게 거대한 파멸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서늘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