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어떻게 지옥이 되었나

시대를 관통한 4개의 밈, 그 속에 슬픈 자화상

by 김형범

사람들은 흔히 유행어를 한철 지나가는 가벼운 농담 따위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밈(Meme)은 단순한 웃음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정의처럼 문화를 복제하고 전달하는 유전자이자,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무의식이 가장 솔직하게 투영된 사회적 화석이다. 우리가 지나온 2000년대 초반부터 2015년까지의 타임라인을 대표적인 밈들을 통해 복기해 보면, 그곳에는 놀랍도록 정교하고 비극적인 서사가 흐르고 있다.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어떻게 마음의 붕괴를 겪었는지 보여주는 '욕망의 연대기'가 바로 그것이다.


2000년대의 문을 연 것은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명랑한 외침이었다. 2001년 말, 한 카드사 광고에서 배우 김정은이 눈밭을 구르며 외친 이 한 마디는 당시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트라우마를 갓 벗어난 시점, 사람들에게 '가난'은 곧 공포였고 생존의 위협이었다. 이전까지 새해 덕담의 자리를 지켰던 '복(福)'이라는 추상적 기원은 '부(富)'라는 노골적이고 물질적인 욕망으로 대체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밈은 희망가였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열심히 달리면 나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 그리고 부자가 되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우리 내면에 긍정적인 명령어로 입력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부자를 꿈꾸며 트랙 위에 섰을 때, 우리는 파이가 한정되어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다. 경쟁은 가속화되었고, 옆 사람을 제쳐야 내가 사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 살벌한 풍경을 예능으로 승화시킨 것이 2000년대 중반을 지배한 "나만 아니면 돼"라는 밈이다.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강호동이 외친 이 대사는 복불복 게임의 승자가 패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터져 나왔다. 대중은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서늘한 공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이 까나리 액젓을 마시든 야외 취침을 하든, 내 안위가 우선이라는 지독한 개인주의. 이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생존 규칙이었다. 연대는 사라졌고, 타인의 불행은 나의 안도를 위한 배경으로 전락했다.


경쟁 끝에 우리가 목격한 것은 무엇인가. 승자독식 구조의 견고함이었다. "부자 되세요"라는 희망을 품고,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발버둥 쳤지만, 사다리의 꼭대기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2009년 <개그콘서트>에서 박성광이 술에 취해 내뱉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는 이 시기의 정서를 대변한다. 이것은 더 이상 희망가도, 생존의 주문도 아니었다.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패배자의 자조이자 냉소였다. 성실함의 신화가 무너진 자리에 박탈감이 들어찼고, 대중은 시스템을 비판하는 대신 세상을 '더럽다'고 욕하며 체념하는 법을 배웠다.


희망으로 시작해 이기심을 거쳐 냉소에 이른 이 여정의 종착지는 필연적으로 지옥일 수밖에 없었다. 2015년 무렵 등장하여 사회를 집어삼킨 단어, '헬조선'은 이 모든 서사의 완성이었다. 과거 조선 시대의 신분제에 빗대어 현대 한국 사회를 지옥으로 규정한 이 밈은 단순한 비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수저계급론과 결합하며,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음을, 그리고 이 지옥불 반도에서는 노력이 배신당할 수밖에 없음을 논리적으로 확증했다. 국가가 나를 구원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 그리고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절망이 '헬(Hell)'이라는 한 글자에 응축된 것이다.


결국 지난 15년여간 우리가 소비해 온 밈의 역사는 대한민국이 '함께 잘 사는 사회'에서 '나만 살면 되는 사회'를 지나, '누구도 살 수 없는 사회'로 변모해 온 과정에 대한 증언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달콤한 욕망의 씨앗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배타적 경쟁을 먹고 자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썩은 열매를 맺었고, 마침내 "헬조선"이라는 황무지를 남겼다. 우리가 웃으며 따라 했던 그 유행어들은 사실 우리가 앓고 있던 시대의 병명이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자조 섞인 밈이 아니라, 이 비극적 서사의 고리를 끊어낼 새로운 언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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