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의자에 낀 톱스타들, 1000만 뷰의 비밀

공중파의 붕괴와 새로운 미디어 권위의 탄생을 목격하며

by 김형범

매년 12월이 되면 우리는 습관처럼 TV 앞에서 연말 시상식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화려한 레드카펫, 눈부신 조명,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지는 무대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종의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 대중의 눈과 귀가 쏠린 곳은 거대한 방송국 공개홀이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은 화려한 무대 장치 하나 없이, 다소 낡고 불편해 보이는 의자에 톱스타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어느 작은 골방이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뜬뜬'에서 진행한 제3회 핑계고 시상식 이야기입니다. 단 며칠 만에 조회수 1000만 회를 훌쩍 넘긴 이 기이한 현상은 단순히 재미있는 예능 한 편이 터졌다는 사실을 넘어, 미디어의 권력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기존 방송사들의 시상식에 꽤나 지쳐 있었습니다. 긴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고, 시청률에 기여한 드라마와 예능에 억지로 상을 쪼개어 주는 '나눠먹기' 관행, 혹은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는 '참가상' 논란은 시상식의 권위를 스스로 갉아먹었습니다. 화려한 겉포장 속에 알맹이는 없는, 마치 밀린 방학 숙제를 해치우듯 진행되는 방송사의 축제에서 시청자들은 더 이상 감동을 느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권위의 공백을 파고든 것은 거대 자본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진정성을 가진 뉴미디어였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이미 몇 해 전부터 감지되었습니다. 웹툰 작가이자 스트리머인 침착맨이 자체적으로 개최한 시상식은 권위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격식 없는 진행 속에서도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함과 재미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 '가짜 시상식'에 '진짜'보다 더 열광했습니다. 또한 뉴스공장의 개표방송은 거대 방송사의 전유물이었던 정보와 기술의 영역조차 뉴미디어가 대등하게, 혹은 더 압도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12월, 핑계고 시상식은 이 모든 흐름을 집대성하며 뉴미디어가 이제 서브컬처가 아닌 주류(Mainstream)의 중심에 섰음을 선언했습니다.


핑계고 시상식이 특별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 '비좁음'과 '소박함'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배우들과 가수들이 좁은 방, 그것도 학교 앞 분식집에서나 볼 법한 초라한 의자에 옹기종기 끼어 앉아 박장대소합니다. 그들은 금 트로피 대신 닭 가슴살이나 커피 쿠폰 같은 소소한 부상을 받으면서도, 방송사의 연기대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편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축하하고 진짜 대화를 나눕니다. 대중은 폼 잡는 스타가 아니라, 친구들과 좁은 방에 모여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발견합니다. 1회 때만 해도 시상식을 쑥스러워하던 배우 이동욱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즐기는 모습은, 스타들 스스로도 뻣뻣한 공중파 트로피보다 이 좁은 골방에서의 인정을 더 힙(Hip)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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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고 시상식은 회를 거듭할 수록 많은 스타들이 참여하였다

결국 핑계고 시상식이 달성한 1000만 뷰라는 숫자는 대중이 미디어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송출되는 화려한 쇼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소 투박하더라도 그 안에 진짜 이야기와 관계, 그리고 솔직한 웃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방송사가 독점하던 '누가 스타인가'를 결정하는 힘, 즉 게이트키핑의 권력은 이제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수백억 원의 제작비보다 중요한 것은 기획의 진정성이며, 권위는 화려한 단상 위에 홀로 서는 것이 아니라 낡은 의자에 앉더라도 대중의 눈높이에서 함께 호흡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핑계고라는 작은 골방의 축제를 통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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