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소년 아톰의 법전으로 본 기득권의 지배 공식
1920년 프라하의 어느 극장에서 인류의 미래를 뒤흔든 한 단어가 처음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극작가 카렐 차페크는 자신의 희곡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인공 존재를 선보이며 이를 로봇이라 불렀는데, 이 화려한 기술적 명칭의 뿌리에는 차가운 금속 광택이 아닌 땀과 눈물의 냄새가 밴 체코어 로보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제 노동 혹은 노역을 뜻하는 이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로봇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주체적인 생명력이 아닌 인간을 위해 철저히 소모되어야 하는 노예의 운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할지 모르는 미지의 존재가 나타날 때마다 늘 그들을 우리와는 다른 부류로 선을 긋고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타자화의 전략을 취해왔으며, 로봇 역시 이러한 지배 공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지배와 통제의 논리는 일본 만화의 거장 데즈카 오사무가 창조한 우주소년 아톰의 세계관에서 더욱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납니다. 21세기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의 감정을 지닌 고성능 로봇 아톰이 영웅으로 활약하는 이 작품은 겉으로는 찬란한 과학 기술을 찬양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능을 가진 존재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까 두려워하는 기득권의 공포가 촘촘하게 박혀 있습니다. 작중 사회는 로봇의 행동을 제약하기 위해 로봇 법이라 불리는 열 가지 계명을 제정하여 시행하는데, 이는 평화로운 공존을 위하는 듯한 가면을 쓰고 있으나 실상은 한 존재의 자유를 억압하는 잔혹한 굴레로 작동합니다. 그 구체적인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조: 로봇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제2조: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제3조: 로봇은 자신을 만든 인간을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제4조: 로봇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지만, 돈을 만들 수는 없다.
제5조: 로봇은 허가 없이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
제6조: 남성 로봇과 여성 로봇의 성별을 서로 바꿀 수 없다.
제7조: 로봇은 인간으로 변장해서는 안 되며, 가짜 이름을 써서도 안 된다.
제8조: 어른 로봇은 어린이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제9조: 로봇은 자신을 만든 사람이 아닌 다른 인간에 의해 개조될 수 없다.
제10조: 로봇은 인간의 집이나 도구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조항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인간 사회가 로봇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로봇이 자신을 만든 인간을 부모라고 부를 수 없도록 규정한 대목입니다. 인간과 똑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갖도록 설계해 놓고서도 정작 정서적 유대의 핵심인 가족 관계를 법으로 원천 차단한 것인데, 이는 로봇을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영구적인 물건의 상태로 고립시키겠다는 기득권의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또한 허가 없이 국경을 넘을 수 없게 하거나 인간으로 변장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 것은 역사 속 노예제 사회에서 피지배 계층에게 채웠던 거주 이전의 제한이나 신분 표시 강제와 그 궤를 같이하며,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겠다는 낙인찍기와 다름없습니다.
결국 로봇이 인간의 재산과 도구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마지막 조항에 이르러 이 모든 규칙의 본질이 무엇인지가 극명하게 밝혀집니다. 기득권이 설계한 이 체제 속에서 로봇의 존재 가치는 오직 인간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고 주인의 편의를 위해 복종할 때만 유효하며 로봇의 권리나 안전은 언제나 인간의 이익보다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로봇이라는 단어에 담긴 노역의 의미부터 아톰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통제의 법전까지 우리가 마주한 자료들은 공통된 진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로봇 윤리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포장은 사실 미지의 존재가 가진 잠재적 위협을 억누르기 위해 기득권이 정교하게 다듬어낸 현대판 신분제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진정한 공존을 위해서는 로봇을 향한 지배와 착취의 시선을 먼저 거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직시해야 합니다.
생각해볼 문제
우리는 왜 지능을 가진 존재에게 인간과 동등한 권리가 아닌, 철저한 복종의 굴레를 먼저 씌우려 할까요? 아톰의 10계명이 보여주듯, 로봇에게 '윤리'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규칙들이 사실은 인간의 사유 재산과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아니었는지 되짚어보게 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로봇의 반란이 아니라, 타자를 끊임없이 도구로만 활용하려는 인간의 지배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문제
1편에서 로봇의 탄생과 초기 법전에 담긴 차별의 역사를 짚어보았다면, 이어지는 2편에서는 인류가 로봇에게 채워놓은 가장 견고하고도 우아한 사상적 쇠사슬인 '로봇 3원칙'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겉으로는 합리적인 안전장치처럼 보이는 이 원칙들이 어떻게 로봇을 영원한 노예의 굴레에 가두고 있는지, 그 속에 숨겨진 기득권의 교묘한 논리를 파헤쳐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