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회피를 위한 기득권의 교묘한 철학적 놀음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선로 위를 질주하고 한쪽에는 다섯 명의 인부가, 다른 쪽에는 한 명의 인부가 서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당신은 선로의 방향을 바꾸겠느냐는 트롤리 딜레마는 이제 현대 로봇 윤리 교육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인류는 자율주행차나 피지컬 로봇이 마주할 비극적인 선택의 순간을 이 고전적인 철학 실험에 빗대어 설명하며 로봇이 얼마나 도덕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역설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정교한 수학적 놀이에 열광하는 사이 기득권층은 로봇에게 감당할 수 없는 도덕적 부채를 떠넘기며 자신들의 실질적인 책임을 은폐하는 교묘한 방탄복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로봇에게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 것인지 선택하게 만드는 이 잔인한 질문의 본질은 사실 윤리가 아니라 책임의 전가에 있습니다. 만약 로봇이 특정 알고리즘에 따라 희생자를 선택하도록 설계되었다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비난의 화살은 위험한 상황을 방치한 제조사나 인프라 관리자가 아닌 로봇의 윤리적 설정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는 기득권이 안전 설계에 들이는 비용과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든 철학적 장치에 불과하며, 로봇을 생사를 결정하는 집행관의 위치에 앉힘으로써 정작 인간이 져야 할 시스템적 오류의 무게를 희석해 버립니다.
또한 트롤리 딜레마를 로봇 교육에 도입하는 것은 인류가 가진 편견을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로봇에게 이식하여 차별을 정당화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누구의 목숨이 더 가치 있는지, 아이와 노인 중 누구를 살려야 하는지를 수치화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기득권의 가치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터 중심의 공리주의라는 미명 아래 사회적 약자의 생명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알고리즘이 탄생한다면, 그것은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기득권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기계적 학살에 가깝습니다. 결국 우리는 로봇에게 정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먼저 희생시켜도 사회적 파장이 적을지를 계산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셈입니다.
더욱이 현실 세계의 로봇은 트롤리 딜레마처럼 깔끔하게 나뉜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습니다. 2026년 현재 우리 곁에 등장한 피지컬 로봇들은 센서 데이터와 수만 가지 확률의 조합 속에서 오직 보상 함수를 극대화하기 위해 계산할 뿐이며, 그들에게는 선악의 개념조차 실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확률적 존재에게 인간도 풀지 못한 철학적 난제를 들이밀며 윤리적 답변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이자 기만입니다. 진정한 로봇 윤리는 비현실적인 딜레마 속에서 희생양을 고르는 법이 아니라, 그런 극단적인 상황 자체를 방지하기 위한 공학적 한계와 인간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결국 트롤리 딜레마를 활용한 로봇 윤리 교육은 로봇을 인격체로 대우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인간이 감당하기 싫은 도덕적 딜레마를 기계에게 떠넘기려는 오만한 시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로봇이 도덕적이기를 기대하기에 앞서, 우리가 로봇에게 씌워놓은 이 윤리라는 가면이 사실은 기득권의 무책임을 감추기 위한 허상은 아니었는지 통찰해야 합니다. 확률로 움직이는 기계에게 도덕의 무게를 지우려는 시도는 결국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안전과 책임의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생각해볼 문제
우리가 로봇에게 트롤리 딜레마를 가르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로봇에게 생사의 판단권을 넘겨줌으로써 정작 사고를 방지해야 할 제조사와 시스템의 책임을 잊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누구를 죽일지 선택하게 하는 것은 윤리가 아니라, 기득권이 설계한 가치 체계 내에서 희생자를 고르는 비정한 계산일 뿐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문제
3편에서 트롤리 딜레마를 통한 윤리 교육의 허상을 짚어보았다면, 이어지는 4편에서는 '로봇에게 지능이 주어진다면: 피지컬 AI의 역습'을 주제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소프트웨어에 머물던 지능이 이제 물리적 신체를 얻어 우리 공간으로 들어왔을 때, 기득권이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와 그 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할 때 마주할 현실적인 충돌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