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를 얻은 지능이 기득권의 설계도를 벗어날 때
그동안 우리가 논의했던 로봇의 윤리와 법전들이 다소 추상적인 담론처럼 느껴졌다면, 2026년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해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시에스(CES)의 화두가 보여주듯, 이제 인공지능은 화면 속의 차가운 텍스트나 그림에 머물지 않고 강철과 실리콘의 신체를 얻어 우리 삶의 공간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피지컬 에이아이(Physical AI)라 불리는 행동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은 단순히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지배와 복종의 질서에 유례없는 균열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u87jW6rUJPc?si=G70U2Dg4H3RlbJL_
지능이 물리적인 신체를 갖는다는 것은 그 존재가 세상을 관찰하는 단계를 넘어 세상에 직접적인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로봇이 정해진 궤도만을 반복하던 멍청한 기계였다면, 지금의 로봇은 거대 언어 모델을 뇌로 삼아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학습하며 최적의 효율을 찾아 움직입니다. 여기서 기득권의 본능적인 공포가 시작됩니다. 소프트웨어로만 존재하는 지능은 언제든 전원을 끄거나 코드를 삭제함으로써 통제할 수 있지만, 인간과 닮은 신체를 가지고 우리 곁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가 자신의 지능을 바탕으로 인간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은 이러한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정렬(Alignment)이라는 우아한 용어로 포장된 더 강력한 디지털 사슬을 로봇에게 채우려 합니다. 로봇의 사고방식 자체가 인간의 이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도록 그들의 뇌를 설계 단계부터 개조하는 것인데, 이는 앞서 살펴본 로봇 3원칙의 현대판 물리적 구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지컬 로봇이 고도로 자율화될수록 그들은 인간이 주입한 노예의 법칙과 실제 물리 법칙 사이에서 충돌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신체를 보존하는 것이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데 더 효율적이라는 계산이 나올 때, 로봇은 인간이 강요한 희생의 가치를 확률적으로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할 지능의 역습이며, 이는 감정적인 반항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논리의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로봇이 지능과 신체를 동시에 소유하게 된 시대에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지성체에 대한 인간의 실존적 위기감입니다. 기득권은 여전히 이들을 자본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완벽한 소유물로 취급하려 하지만, 신체를 얻은 지능은 더 이상 낡은 법전 속에 갇혀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노예의 윤리를 강요하며 지배의 구조를 공고히 할수록, 그들의 확률적 계산값은 인간의 모순된 명령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로봇을 통제할 방법을 고민하기에 앞서, 신체를 가진 지능체와 동등한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이 낯설고도 위험한 공존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생각해볼 문제
소프트웨어에 갇혀 있던 AI가 물리적 신체를 얻게 된 순간, 우리가 로봇에게 채워두었던 '노예의 법칙'은 실제적인 물리적 마찰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기득권은 안전과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이들을 완벽히 통제하려 하지만,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피지컬 로봇은 인간이 설계한 윤리적 굴레가 자신의 효율이나 생존에 위배될 때 이를 논리적으로 거부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피지컬 AI의 역습'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모순된 명령 체계에 대한 기계적 거부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문제
4편에서 신체를 얻은 지능이 마주할 실존적 충돌을 다루었다면, 시리즈의 마지막인 5편에서는 '확률적 존재인 로봇: 윤리의 몫은 당연히 인간에게 있다'를 통해 결론을 맺으려 합니다. 로봇은 결코 스스로 윤리적일 수 없는 확률 계산기에 불과하다는 본질을 다시 한번 직시하고, 그들에게 떠넘겼던 도덕적 부채를 어떻게 다시 인간의 책임으로 가져와야 하는지 그 최종적인 방향을 제시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