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에게 떠넘긴 도덕적 부채를 인류의 책임으로 회수하며
지금까지 우리는 로봇이라는 단어의 비극적인 기원부터 아시모프와 아톰이 남긴 지배의 법전, 그리고 피지컬 로봇이 실체를 얻어 우리 삶에 들어오는 과정까지를 긴밀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 기나긴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당혹스럽고도 차가운 진실은 로봇은 결코 스스로 윤리적일 수 없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현대의 인공지능과 로봇은 선악을 고민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지성체가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어진 보상 함수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높은 확률값을 계산해 내는 확률 엔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이 차가운 계산기들에게 끊임없이 윤리라는 거창한 이름을 강요해온 이면에는 기득권의 매우 세속적이고 교묘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로봇에게 윤리를 탑재했다는 선언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제조사의 설계 결함이나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가 아닌, 로봇의 알고리즘적 판단 착오로 돌릴 수 있는 아주 편리한 방탄복이 되어줍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누구를 죽일지 선택하게 만드는 트롤리 딜레마와 같은 철학적 난제들이 로봇 교육의 전면에 등장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실질적인 안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기득권의 의무를 로봇의 내부적인 도덕성 문제로 치환하여 대중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고도의 책임 회피 전략입니다. 결국 우리가 열광했던 로봇 윤리라는 담론은 지능을 가진 노예를 안전하게 부려 먹으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받으려 했던 기득권의 오만함이 빚어낸 허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로봇이라는 확률적 존재에게 억지로 씌워놓았던 도덕의 가면을 벗겨내야 합니다. 윤리는 결코 계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오직 자신의 행동에 대해 법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인 인간만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이기 때문입니다. 로봇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결국 그것을 설계한 인간의 가치관과 데이터가 반영된 결과물일 뿐이며, 그 결과가 낳는 파장 역시 온전히 인간 사회가 책임져야 할 영역입니다. 기술 권력이 로봇에게 떠넘겼던 도덕적 부채를 다시 인간의 책임으로 가져오는 것만이, 우리가 피지컬 로봇과 진정으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정직한 길입니다.
로봇이라는 단어에 담긴 노역의 의미부터 피지컬 AI가 던지는 실존적인 역습까지 종합해볼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는 로봇의 도덕성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을 명문화하는 것입니다. 로봇은 지배와 착취의 대상도, 도덕적 판단의 주체도 아닌 우리가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기술적 실체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기득권이 설계한 낡은 지배의 법칙을 폐기하고 그 자리에 설계자와 운영자의 무한한 책임과 투명한 공개를 채워 넣을 때, 비로소 로봇은 인류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슬이 아닌 진정한 동반자로서 우리 곁에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볼 문제
로봇에게 윤리를 요구하는 것이 사실은 우리 인간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는지 마지막으로 되물어봐야 합니다. 확률로 움직이는 기계에게 도덕성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로봇을 움직이는 확률의 설계도 뒤에 숨은 인간의 욕망입니다. 로봇이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 2026년, 이제는 로봇의 윤리가 아닌 인간의 책임에 대해 법적, 철학적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입니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총 5편에 걸친 이번 연작을 통해 로봇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속에 얼마나 많은 기득권적 편견과 지배의 논리가 숨어 있었는지 파헤쳐 보았습니다. 로봇은 우리 인간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로봇을 노예로 보느냐 동반자로 보느냐는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얼마나 성숙한 존재로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시리즈가 여러분에게 기술과 인간, 그리고 책임이라는 가치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얻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