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위해 본명을 버린 거장

에릭 블레어라는 과거를 넘어 시대의 양심이 되기까지

by 김형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름이 사실은 누군가의 진짜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묘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조지 오웰 역시 평생을 '에릭 아서 블레어'라는 본명 대신 자신이 직접 지은 이름 뒤에 숨어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의 제국주의 경찰로 근무하며 주류 사회의 길을 걸었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안락함을 뒤로한 채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가로 변모했습니다. 이 드라마틱한 변화의 시작점에는 그가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던 순간의 아주 인간적이고도 절박한 고민이 깊게 서려 있습니다.


그가 처음 예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인 《파리와 런던의 부랑자들》을 출판할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밑바닥 삶을 직접 체험하며 겪었던 부랑자 생활의 기록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혹시라도 자신의 가족들이 입게 될 당혹감과 수치심을 무엇보다 걱정했습니다. 또한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그는 만약 책이 실패한다면 본명으로 계속 활동하는 데 지장이 생길까 염려했고, 출판사 역시 그의 과거 행적이 직장 생활 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예명을 제안했습니다.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기까지는 꽤 치열하고도 흥미로운 고민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학 에이전트에게 여러 후보 이름을 제안했는데, 여기에는 P.S. 버튼, 케네스 마일스, H. 루이스 올웨이즈 같은 이름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치열한 경합 끝에 최종적으로 선택된 이름이 바로 조지 오웰입니다. 그는 이 이름이 '원만하고 좋은 영국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국의 수호성인인 '성 조지'에서 이름을 따오고, 자신이 자라면서 무척이나 사랑하며 산책을 즐겼던 서퍽주의 '오웰강' 이름을 붙여 지금의 필명을 완성한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은 단순히 가족을 보호하거나 본명을 숨기기 위한 수단을 넘어, 그의 내면을 완전히 뒤바꾸는 상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대영제국의 질서를 수호하던 경찰이었던 에릭 블레어라는 과거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권력의 억압에 맞서 진실을 말하는 작가 조지 오웰로서의 새로운 자아를 구축한 것입니다. 이 이름은 그의 삶에 너무나 깊숙이 스며들어 훗날 그의 가족과 오랜 친구들조차 그를 에릭이 아닌 조지라고 부를 만큼 그의 실제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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