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빚을 갚기 위해 써 내려간 대문호의 작품들

도스토옙스키의 위험한 이중생활

by 김형범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라고 하면 대개 어둡고 무거운 서재에 앉아 인간의 심연을 탐구하는 근엄한 노작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전으로 추앙하는 그의 치밀한 심리 묘사와 처절한 인간 군상의 모습은 사실 고결한 명상보다는 자욱한 담배 연기와 숨 가쁜 도박장의 소음 속에서 싹을 틔웠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이었지만, 동시에 룰렛 테이블 앞에서 전 재산을 탕진하고 전당포를 전전하던 지독한 도박 중독자였습니다.


그의 위험한 탐닉이 극에 달했던 것은 1863년 독일 비스바덴에서였습니다. 그는 처음 룰렛의 매력에 빠져든 후 단숨에 전 재산을 날렸고, 심지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차고 있던 시계까지 전당포에 맡겨야 했습니다. 작가로서의 명성은 드높았지만 그의 지갑은 늘 비어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출판사와의 가혹한 계약 조건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만약 정해진 기한 내에 새로운 소설을 제출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쓴 모든 작품과 앞으로 쓸 작품의 저작권을 출판사에 통째로 넘겨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 무모하고도 절박한 도박에서 이기기 위해 그는 단 26일 만에 소설 한 권을 써내야만 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정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도박꾼》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원고 작성을 도와줄 속기사 안나를 고용하게 되는데, 그는 그녀에게 원고를 구술하면서 자신의 도박 경험과 그로 인한 피폐한 심리를 가감 없이 쏟아냈습니다. 안나는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으로 가계의 모든 돈을 탕진하고 심지어 그녀의 겉옷과 속옷까지 전당포에 맡겨야 했던 비참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결국 그는 기적적으로 마감 시한을 지켜냈고, 이 과정에서 정을 쌓은 속기사 안나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반전 드라마였던 셈입니다.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쫓기듯 써 내려간 문장들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와 탐욕,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갈망을 가장 생생하게 담아내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가 룰렛 테이블에서 겪었던 그 지독한 패배감과 절망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마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깊이 있는 심리 소설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도박은 단순한 일탈을 넘어 그의 문학 세계를 지탱하는 거친 동력이었습니다. 빚쟁이에게 쫓기며 속기사의 손을 빌려 원고를 채워가던 그의 초라한 뒷모습은, 가장 비천한 인간의 욕망 속에서도 고귀한 예술이 피어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그 지독하리만큼 사실적인 인간 심리의 고통은, 그가 직접 룰렛 테이블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맞바꾼 진실한 기록들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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