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2편

시선이 바뀌면 진리가 변한다, 소인국과 거인국이 남긴 상대성에 관한 통찰

by 김형범

평범한 선박 의사였던 레뮤엘 걸리버가 거친 바다로 몸을 던진 것은 단순한 모험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런던에서의 병원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고 가계가 기울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먼 항해길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1699년 겨울, 강한 폭풍우를 만난 배가 암초에 부딪혀 난파되면서 평범했던 삶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홀로 살아남아 정신을 잃었던 그가 눈을 떴을 때 마주한 풍경은 기괴함 그 자체였습니다. 몸은 가느다란 실 수천 가닥에 묶여 있었고, 가슴 위로는 화살을 든 예순 명의 작은 사람이 기어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잘 아는 소인국 릴리퍼트와의 첫 만남이자, 거대한 풍자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소인국에서 목격한 풍경은 지독하리만치 우스꽝스럽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구두 굽의 높이 차이로 당파를 나누어 싸우고, 달걀을 어느 쪽으로 깨느냐는 하찮은 문제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치릅니다. 산처럼 거대한 걸리버의 시선에서 그들의 갈등은 그저 개미들의 소동처럼 보일 뿐이지만, 정작 그 안의 소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 사회의 정치가 실은 얼마나 사소한 명분에 매몰되어 있는지를 꼬집습니다. 거대한 숲을 보지 못한 채 좁은 울타리 안에서 벌이는 치열한 다툼들이, 더 큰 존재의 눈에는 소인국의 달걀 전쟁과 다를 바 없다는 서늘한 경고를 던지는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소인국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 걸리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바다로 나갑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운명의 장난처럼 소인국과는 정반대인 거인국 브롭딩낵에 홀로 남겨집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소인들의 도시를 발아래 두고 신처럼 군림하던 그는, 이제 거인들의 식탁 위에서 재롱을 떨거나 농부의 딸이 가지고 노는 인형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걸리버 여행기』가 설계한 이 극단적인 크기의 대비는 단순히 신체적 조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가 아닙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권력, 도덕, 그리고 가치라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상대적이고 보잘것없는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증명하는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거인국에서 걸리버는 벌레와 같은 존재가 되어, 자신이 몸담았던 유럽 문명의 위대함을 거인국 왕에게 열심히 설명합니다. 화약의 파괴력과 법 제도의 우수성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걸리버를 보며 왕은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왕은 인간이라는 종족을 향해 지구상에 기어 다니는 가장 혐오스러운 벌레 무리 중에서도 가장 유해한 작은 벌레들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소인국에서 느꼈던 우월감은 거인의 시선 아래에서 추악한 야만성으로 변질되었고, 믿어온 문명의 진보는 그저 파괴를 위한 잔기술에 불과함이 폭로되었습니다.


소인국과 거인국을 넘나들었던 걸리버의 여정은 세상을 보는 시야가 얼마나 좁고 편협한지를 알려줍니다. 소인들의 옹졸함은 곧 우리의 모습이며, 거인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야만성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민낯입니다. 작가는 크기의 변화라는 시각적 은유를 통해, 권력의 힘이나 지식의 높이가 결코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역설합니다. 이제는 기묘한 시선의 전복을 통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절대적이라 믿으며 매달리고 있는 가치들이, 과연 시점의 위치를 조금만 바꿔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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