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3편

하늘 위에 높이 쌓아 올린 오만한 지식의 감옥, 매춘부라 불린 비행 도시

by 김형범

거인국에서 돌아온 걸리버의 세 번째 여정은 땅이 아닌 하늘로 향합니다. 해적의 공격을 받아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그는 구름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해를 가리는 기묘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것은 자기력의 원리를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원형 섬, 바로 라퓨타였습니다. 훗날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에 의해 낭만적인 천공의 성으로 재탄생하며 대중에게 각인된 이름이지만, 이야기꾼 조나단 스위프트가 이 섬에 붙인 원래 이름에는 등등한 살기가 서려 있습니다. 라퓨타는 스페인어로 매춘부를 뜻하는 단어와 발음이 같습니다. 작가는 왜 하늘 위 고결해 보이는 도시에 이토록 모욕적인 이름을 붙였을까요.


라퓨타의 사람들은 오로지 수학과 음악, 천문학 같은 고차원적인 학문에만 병적으로 몰두합니다. 그들의 한쪽 눈은 안으로 굽어 자신의 사색만 살피고, 다른 쪽 눈은 하늘을 향해 있어 정작 발밑의 현실은 보지 못합니다. 이들은 사색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옆에서 하인이 방울 달린 막대기로 입이나 귀를 때려주지 않으면 대화조차 이어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스위프트는 이들의 모습에 매춘부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실용적인 가치나 도덕적 책무를 저버린 채 오직 지적 유희와 허영만을 위해 지식을 팔아치우는 지식인들의 타락을 신랄하게 꼬집었습니다.


이러한 풍자의 서슬 퍼런 칼날은 현대에 들어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를 통해 대중적인 낭만으로 덧칠되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어린 시절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의 설정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그 이름이 스페인어권에서 비속어로 쓰인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고 전해집니다. 덕분에 원작 속의 오만하고 냉혹한 지식의 요새는 잃어버린 고대 문명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유토피아로 변모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오역과 재해석은 오히려 풍자의 본질을 더욱 도드라지게 합니다. 비판의 대상이었던 추악한 권력이 세월을 지나 아름다운 추억의 상징이 된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기묘한 풍자처럼 읽히기 때문입니다.


섬 아래 지상에 위치한 라가도 학술원의 모습은 지식인의 오만함이 빚어낸 비극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그곳의 학자들은 오이에서 햇빛을 추출하거나 인간의 배설물을 다시 음식으로 되돌리는 식의 황당하고 쓸모없는 연구에 국가의 모든 자원을 쏟아붓습니다. 정작 백성들은 굶주림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음에도, 그들은 오직 이론의 완벽함에만 집착하며 하늘 위의 섬에서 지상을 향해 돌을 떨어뜨려 위협할 뿐입니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채 자신들만의 상아탑에 갇힌 권력층이 어떻게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묘사입니다.


하늘 위에 지은 모래성인 라퓨타는 실천이 거세된 지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합니다. 땅을 딛지 못한 채 구름 위를 부유하는 지식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대신,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사이의 거대한 벽을 만들 뿐입니다. 낭만적인 천공의 성이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마주한 라퓨타의 본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높은 곳에서 여전히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자기들만의 수식에 몰두하는 수많은 '라퓨타인'을 향한 매서운 경종입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이야기꾼의 통찰은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쌓아 올린 지식의 탑이 누군가를 보듬는 지붕인지, 아니면 그들을 짓누르는 거대한 바위인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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