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4편

불사신이라는 축복의 가면을 쓴 저주, 스트럴드브러그가 던진 불멸의 허상

by 김형범

하늘 위의 섬 라퓨타를 떠난 걸리버가 도착한 러그낵 왕국에는 인류가 태초부터 갈망해온 신비로운 존재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마에 붉은 점을 점지받고 태어나 결코 죽지 않는 운명을 타고난 자들, 바로 스트럴드브러그입니다.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된 이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걸리버는 큰 감격에 빠졌습니다. 불멸의 삶만 있다면 고대의 지혜를 영원히 축적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역사를 지켜보며 살아있는 박물관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꾼 조나단 스위프트가 이들의 삶을 묘사하기 시작하자,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은 순식간에 가장 잔혹한 악몽으로 변모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영원한 생명일 뿐, 영원한 젊음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서른 살이 되면 우울해지기 시작하고, 여든 살이 넘어가면 여느 인간처럼 늙고 병들어 가지만 그 지점에서 시간이 멈춰버립니다. 치아는 빠지고 머리카락은 바스러지며, 시력과 청력은 희미해지는데도 숨이 끊어지는 안식만은 허락되지 않는 것입니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기억조차 영원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사랑했던 이들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 채, 변해버린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됩니다. 이들에게 불멸은 지혜의 축적이 아니라, 고독과 질병이 무한히 반복되는 영겁의 감옥일 뿐입니다.


이 기괴한 풍경은 삶의 가치가 생명의 길이가 아닌, 끝이 있다는 사실에서 온다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러그낵 왕국에서 스트럴드브러그는 법적으로 죽은 사람 취급을 받으며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오직 최소한의 연명 치료만을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죽지 못해 사는 이들의 눈동자에는 삶에 대한 애착 대신, 오로지 죽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평범한 인간들에 대한 지독한 질투만이 서려 있습니다. 스위프트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꼬집습니다. 노화와 쇠퇴를 피할 수 없는 육신에 영혼을 가두는 것이야말로 신이 내릴 수 있는 가장 가혹한 형벌임을 폭로한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 기술의 발달로 수명 연장을 꿈꾸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단순한 판타지 이상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지 않는 영화가 예술로서 성립할 수 없듯,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사라진 삶은 그저 의미 없는 소음의 연속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불멸이라는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내고, 그 안에 담긴 소외와 상실의 고통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스트럴드브러그의 저주는 결국 유한한 삶이기에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찬란하고 소중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삶이라는 이름의 감옥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는 오만이 불러온 비극입니다. 죽음을 정복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는 정작 살아있음의 본질인 성장과 변화를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스트럴드브러그의 퀭한 눈빛은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에게 묻습니다. 무의미하게 길기만 한 영생을 얻기 위해, 당신은 매 순간을 보석처럼 반짝이게 만드는 죽음이라는 축복을 기꺼이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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