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5편

짐승이 된 인간 야후와 고결한 말 후이넘이 던진 최후의 질문

by 김형범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장은 앞선 모든 모험을 압도할 만큼 충격적인 결말로 우리를 이끕니다. 네 번째 항해에 나섰던 걸리버는 선원들의 반란으로 이름 모를 섬에 홀로 버려집니다. 그곳에서 온몸이 털로 뒤덮인 채 배설물을 흩뿌리며 탐욕스럽게 싸우는 끔찍한 괴물들과 마주합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오직 본능과 악의에만 충실한 이들은 '야후'라고 불리는 짐승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미개한 야후들을 가축처럼 다스리며 고결한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이들은 놀랍게도 이성을 가진 말, 즉 '후이넘'이었습니다.


후이넘의 사회에는 거짓말이나 의심, 전쟁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이성과 우애에 근거하여 공동체를 운영하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걸리버는 이 우아한 말들의 세계에 감화되어 자신이 살던 인간 세상을 설명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법률가들이 흑백을 뒤바꾸고, 정치가들이 권력을 위해 음모를 꾸미며,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을 문명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는 고백을 들은 후이넘은 결론 내립니다. 인간이란 이성을 가졌기에 오히려 그 이성을 악용하여 야후보다 더 잔인하고 교활해진 변종 짐승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이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인간성이라는 오만한 환상을 완전히 박살 냅니다. 걸리버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서 야후를 발견하고 깊은 혐오에 빠집니다. 인간 문명이 쌓아 올린 찬란한 금탑들이 실은 야후의 탐욕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 걸리버는 사랑하는 가족조차 야후처럼 느껴져 그들의 손길을 거부하고 마구간에서 말들과 대화하며 여생을 보냅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광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족이 가진 근원적인 결함에 절망한 이야기꾼의 처절한 비명이기도 합니다.


이 지독한 인간 혐오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품격에 대한 간절한 갈구입니다. 작가는 말을 숭배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야후와 다를 바 없는 본능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이성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면서도 야후처럼 시기하고 증오하는 데 이성을 소모하고 있다면, 과연 우리에게 말보다 나은 품격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말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조롱 섞인 경고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질적인 인간다움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되묻게 합니다. 옷을 입고 도구를 사용한다고 해서 야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300년 전의 풍자가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탐욕과 분노에 눈먼 야후의 비명이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 했던 걸리버의 외로운 고군분투는 이제 우리에게 그 바통을 넘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후이넘의 품격을 지향할 것인지, 아니면 문명의 탈을 쓴 야후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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