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실수-004
서울 창신동에서 마을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함께 영상을 만들어보는 수업이었다. 혼자 감당하기엔 벅차 보조교사가 필요했고, 겸사겸사 인천에 사는 대학 동기를 불렀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도 보고, 핑계 김에 쏠쏠한 강의비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내린 결정이었다.
총 4회차로 기획된 수업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문제는 마지막 4번째 수업 날 벌어졌다. 약속된 시간이 다 되도록 수업을 들어야 할 아이들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구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사업이었기에 출석률은 곧 평가와 직결되었고, 그 묵직한 압박감에 나는 극도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텅 빈 교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속을 끓이는 내 모습을 보고 동기가 무언가 한마디를 건넸다. 정확히 어떤 말이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날카로워져 있던 내 신경을 건드리기엔 충분했고, 나는 욱하는 마음에 뇌를 거치지 않은 가시 돋친 반박을 쏟아내고 말았다.
"너 오늘 시급 못 받을 수도 있어."
조급함과 스트레스가 빚어낸, 참으로 치졸하고 옹졸한 방어기제였다. 그 말을 들은 친구의 표정은 일순간 굳어버렸다. 그는 도대체 왜 자신이 돈을 받지 못해야 하냐며 거세게 화를 냈다. 그리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서늘하게 덧붙였다.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고.
그 선언 같은 외침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가 알게 모르게 오랜 세월 그 친구에게 지워온 감정의 빚이, 배려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무례함이 꽤나 무거웠던 모양이다. 그날의 다툼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평생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벼운 입술을 떠난 모진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주 오래전부터 겹겹이 쌓여오던 나의 업이 하필 그날, 그 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린 것일까. 창신동의 텅 빈 교실을 떠올릴 때면, 얄팍한 시급이라는 단어로 끊어내버린 오랜 인연의 무게가 여전히 씁쓸하게 가슴을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