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규정짓는 게으름에 대해서
살다 보니 나만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인다. '이런 부류는 이렇다' 하고 나름의 판별 기준이 생긴 것이다. 그중에서도 소위 '꼰대'를 가려내는 아주 사소하지만 확실한 기준이 하나 있다. 바로 '남녀가 같이 있으면 무조건 사귀는 사이로 보는가'이다.
기억은 대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같은 과 여자 후배랑 나란히 학교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마침 우리 앞을 지나던 교수님이자 과 선배이기도 한 분이 우리를 멈춰 세우더니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이, 너희 둘이 사귀냐?"
그 순간, 설명하기 힘든 거부감과 함께 '참 꼰대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단순히 선배의 짓궂은 농담이라기엔, 그 질문 속에 담긴 무례한 단정의 냄새가 너무 짙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도 비슷한 경험은 계속되었다. 남녀가 같이 밥을 먹든, 대화를 나누든, 길을 걷기만 해도 주변의 어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둘이 무슨 사이냐'며 관계의 이름을 강요하곤 했다. 그런 경험이 겹겹이 쌓이니 비로소 그 질문의 본질이 보였다.
그건 관심이 아니라 사실 '생각하기 귀찮음'이었다.
사람 사이에는 우정, 동료애, 그냥 우연, 혹은 정의 내리기 힘든 수만 가지의 결이 존재한다. 하지만 꼰대의 특징 중 하나는 그 복잡한 맥락을 들여다볼 여유도, 의지도 없다는 점이다. 타인의 관계를 자기의 낡은 잣대에 맞춰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정해버리는 것. 그게 그들이 세상을 편하게 사는 방식이었다.
생각의 게으름은 결국 무례함으로 이어진다. 타인의 삶을 제멋대로 편집하고 결론 내리는 태도는 상대를 인격체가 아니라 그냥 자기 가십거리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꼰대 판별법'은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타인의 관계를 쉽게 단정 짓는 사람치고, 다른 부분에서 유연하고 열린 사고를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으니까.
부끄럽지만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가끔 타인의 관계를 그런 쉬운 방식으로 넘겨짚으려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는다. 단순히 '꼰대가 되지 말자'는 다짐을 넘어, '그들만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다.
편견의 안경을 쓰는 순간 생각은 멈추고 오만은 자라난다. 타인을 향한 상상력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순식간에 꼰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무섭게 다가오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