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사람은 모두 다 죽어

이야기는 현실의 부조리를 이길 수 없다

by 김형범


이야기는 절대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다.


기획은 기가 막히게 뽑아내면서도 막상 시나리오는 잘 못 쓰는 작가를 알고 있다. 글 쓰는 일이 본업이 아닌 부업이라지만, 원안 하나로 대형 제작사에 작품을 판 경력이 있는 작가다. 그런데 그가 써 내려간 글을 읽다 보면 황당하다 못해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 그의 시나리오에서 아주 기막힌 장면 하나를 마주했다.


주인공을 구하려 친구와 연인이 함께 적진에 침투하는 비장한 장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친구가 적진 한가운데 낙오하고 만다. 절체절명의 위기. 이런 장르에 익숙한 우리는 이 지점에서 어떤 숭고한 갈등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연인이 주인공에게 다급하게 묻는다.


"구하러 가야 하지 않아?"


보통이라면 여기서 주인공은 피 끓는 전우애를 불태우며 다시 총을 집어 들거나, 최소한 뼈를 깎는 듯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민에 빠져야 마땅하다. 우리가 허구의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논리적 연결'이자 이야기의 도덕적 당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주인공은, 내가 상상조차 못한 대사를 뱉었다.


"어차피 사람은 모두 다 죽어."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것은 작법의 실패를 넘어선 서사적 자살이었다.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든 친구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클라이맥스로 터져 나와야 할 순간에 우주적이고 염세적인 허무를 툭 던져버리다니. 이야기가 완전히 무너지며 생긴 기묘한 어긋남 속에서 나는 그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가끔 그 시나리오의 그 장면이 생각난다. 그때마다 어이없는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묘한 서늘함이 남았다. 정상적이지 않은 이 엉터리 시나리오가, 묘하게도 삶을 날카롭게 꿰뚫는 한 편의 완벽한 블랙코미디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허구 속에서 완벽한 인과관계와 거창한 명분을 갈구한다. 숭고한 희생이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인물의 동기가 끝까지 일관되기를 바란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말이다.


현실의 삶은 그 엉망진창인 대본처럼 뜬금없고 부조리하며, 때로는 지독하게 허무하다. 거창한 명분이나 뜨거운 전우애 앞에서도 결국 살아남으려는 얄팍한 이기심이 앞서고, 죽음이라는 압도적인 결말 앞에서는 그 어떤 영웅담도 순식간에 의미를 잃는다. 억지로 짜 맞춘 이야기와 통제 불가능한 현실이 충돌하는 바로 그 지점. "어차피 다 죽는다"는 주인공의 어처구니없는 한마디는, 이야기의 논리가 무너진 틈새로 현실의 차가운 진리를 우겨넣었다.


작가의 허술함이 의도치 않게 인간 본성 밑바닥에 깔린 생존 본능과 염세적인 진실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이야기는 절대로 현실의 부조리를 뛰어넘을 수 없다.


아무리 정교하게 당위와 인과를 짜 맞춰도, 무질서하고 차가운 삶의 맨얼굴 앞에서는 결국 다정하게 꾸며낸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인과율이 처참하게 무너진 이 실패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이야기가 붕괴하는 와중에 불쑥 튀어나온 이 지독한 블랙코미디야말로, 어떤 명작보다 더 정직하게 삶의 허무를 들이미는 예술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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