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첫주에 봤던 영화 기억

최고의 영화-001

by 김형범

밀레니엄의 들뜸이 채 가시지 않았던 2000년, 나는 00학번으로 대학 문을 두드렸다.


스물여섯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연극영화과 신입생이 된 것이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마 3월 3일 무렵이었을 것이다. 개강 첫 주라 수업은 오리엔테이션으로 금세 끝났고, 학과 공식 모임마저 금요일로 미뤄져 있어 당장 하루의 여백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갓 통성명을 한 동기와 함께 붕 떠버린 시간을 어찌할까 이리저리 궁리하다, 결국 우리가 향한 곳은 강남역 근처에 있던 씨티극장이었다.


그날 우리가 고른 영화는 스크린 곳곳에 소소한 유머가 배어 있으면서도, 곱씹을수록 기저에 깔린 현실의 씁쓸함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의 윤색이 조금 더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유독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원하던 대로 대학교수가 된 남자는 강의를 위해 슬라이드를 켜고 커튼을 친다. 어두워진 강의실, 그 커튼 틈새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든다. 화면이 교차하면 여자는 친구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다. 그녀는 영화 중반 친구가 하이킥으로 얻은 차 사이드미러를 꺼내 들어 햇빛을 반사시킨다. 전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두 사람이지만, 남자에게 닿은 그 빛이 혹시 산 위의 여자가 보낸 눈부심은 아니었을까. 그때 스크린에 비친 여자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담담해 보였다.


이윽고 이승환의 서정적인 목소리가 엔딩 크레딧과 함께 극장 안에 울려 퍼졌다.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였다.


극장을 나선 후에도 영화가 남긴 묘한 씁쓸함과 짙은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우리는 갓 사귄 대학 동기들이 으레 거치는 시끌벅적한 뒤풀이도 생략한 채, 각자의 상념을 안고 조용히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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