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기억에 오래 남을 여행이 돼 버렸다.
멕시코 여행을 시직 한 지 일주일이 된 날, 꽤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멕시코의 날씨는 생각보다 더 쌀쌀한데, 우리가 머물던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는 고산지역인 데다가 날씨가 흐려 이날은 유난히 더 서늘했다. 식당을 예약한 시간이 가까워 옷을 갈아입으려는 찰나, 지난밤 남자친구가 흘리듯 “내일 내가 사준 그 원피스 입고 가자.”던 그 말이 생각났다. 얇은 원피스를 입기에는 차가운 날이었지만 한 번도 내 옷이나 화장에 대해서 요구사항이 없던 오빠가 한 말이라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오빠가 선물해 준 녹색 원피스에 한국에서 챙겨 온 내가 좋아하는 Fruta 귀걸이까지 차고 숙소를 나섰다.
식당에 도착하니 미리 예약을 했던 지라 야외 안쪽 자리로 안내를 해줬다.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 나는 오빠에게 메뉴 선택을 맡기고 두리번두리번 식당을 구경했다. 예약을 할 때부터 도움을 줬던 웨이터(이름이 아마 알프레도였던 것 같은데!)가 음식 서빙을 시작했다. 식전 음식이 차례로 나오고 메뉴를 상세하게 설명해 줘서 제대로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하나하나 음식을 음미하고 있는데, 우리 자리 정면에 보이는 식당 입구에서 여러 명의 악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본 멋지게 옷을 빼입고 콧수염을 기른 그 악사들 말이다! 그런데 7명 정도 되는 악사들이 우리 테이블을 둘러싸는 게 아닌가? '어? 이게 무슨 일인지?' 갸우뚱한 얼굴로 오빠를 쳐다봤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마리아치야.”
어? 아! 이때 불현듯 떠오른 장면. 음식점 예약을 하는데 못 알아듣는 스페인어 사이에서 “뮤지션”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혔다. 웬 뮤지션? 뮤지션이 나오는 식당인가? 하는 궁금증은 있었으나 가보면 알겠지 하고는 넘어갔는데. 아 그 뮤지션이 이 뮤지션이었구나..!
놀란 내가 질문을 던질 틈도 없이 마치 아치 악사들은 연주를 시작했다. 우리 말고 한 테이블에 손님이 더 있었는데, 그분들도 음식점의 다른 스태프들도 우리 테이블만 쳐다보는데 어찌나 민망하고 당황스럽던지. 물론 연주는 참 신나고 흥겨웠다! 그렇게 연주를 하는데 식사를 계속해도 될지 몰라 오빠는 담당 웨이터에게 식사를 해도 좋을지 물어봤다. 아무래도 연주를 하는 그 앞에서 우리만 식사를 하는 게 너무 어색하고 민망해 연주 중간에 잠깐 쉬는 타이밍에 마리아치들도 식사를 하고 오셨는지도 물어봤다. (다행히 모두 식사를 하고 오셨단다 ㅋㅋ)
밥이 코로 들어가나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체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노래가 멈췄다. 갸우뚱하는 날차 오빠는 내게 편지 봉투를 건넸다. 놀란 마음에 봉투를 열어 카드를 보는데 아니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정말이지 눈물이 앞을 가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보면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민망해서 웃다 감동받아서 울다!!
편지를 다 읽으니 오빠는 새파란 라피스 라줄리로 만든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반짝이는 파랑 보석이 박힌 반지가 놓여있었다. 아.. 그래서 나한테 반지 사이즈를 물어봤구나…!
몇 주전 뜬금없이 반지 사이즈를 물어봐서 왜 그러냐고 하니 반지 선물해 주게~ 쿨하게 말한 뒤로 나도 잊고 있었는데 프러포즈 반지를 준비하는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반지는 눈물 나게 예뻤는데. 나는 내 손가락 사이즈를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ㅋㅋ 잘못 알고 있던 사이즈로 맞춘 반지는 컸지만, 고심해서 골랐을 스리랑카의 블루사파이어는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오빠는 당장 대답 안 해도 된다고 덧붙였지만, 그럴 필요, 뭐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