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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ng Jan 23. 2024

[스노삶] 남의 일 깎아내리기

스타트업 노동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재 나의 직함은 사업개발 매니저 (Business Development manager)이다. 지금 소속된 스타트업에 입사할때는 사업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군으로 들어왔으나, 입사 후 약 2달이 지나고 프로젝트 매니저들의 직함은 사업개발 매니저로 변경됐다. 이름값을 해야하니 업무 또한 변경됐다. 사업개발 매니저라는 직무도 몰랐는데 갑자기 직함이 바꼈지만 사실 개의치않았다. 하는 업무 자체가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고 직함, 직무를 따질 새가 없이 들어오는 일을 열심히 해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파트너 기업 및 정부기관과 미팅을하면서 명함을 주고받는 일이 있을때 마다 직무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특히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편리하게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방법은 명함을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직함에 대한 얘기를 꽤나 자주 하게 되더라.


사업개발 매니저라는 직무는 영업 / 인사 / 마케팅 / 회계 등 듣자마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직무는 아닐 것이다. 국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생긴 직무기도하고 영업 파트로 생각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일을 하면서 해당 직무에 대한 모호함과 막막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약 2년 정도 해당 일을 하면서 어렴풋이 습득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BDM에게 일을 벌리는 역량은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우리 회사의 제품. 서비스 등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곳에 연락해 협업을 제안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콜드 메일이나 콜드콜을 하는 건 다반사이다. 나는 스타트업의 보육 및 투자유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데, 작년 초 새해 중앙부처에서 나온 스타트업 지원 프로젝트들을 보면서 우리 팀에서 진행하면 좋을 프로젝트를 선별했다. 몇몇 기관에 전화를 하다 다시 문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동료 한 명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였다.


"앵벌이 전화하는거야?"


사실 정확한 문장을 완전히 기억하지는 못하나 *앵벌이라는 단어는 1년이 지나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무슨 소리야~."하고는 웃어 넘겼지만, 앵벌이 하는 것 처럼 보인다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뒷골이 살짝 당겼다. 웬만하면 웃으면서 할 말 다 하는 성격의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 말을 한 장본인은, 결혼을 하면 가정주부를 할 계획이라 커리어 성장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하곤 한 동료였다. 그걸 알아서인지, 그녀가 바쁜 시즌에도 거의 매일 칼퇴를 하거나 사업 수주에 적극적이지 않는 모습을 보일때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사담을 나눌때는 꽤나 죽이 잘맞아서 사이가 좋은 편이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는 사이지만 거의 1년이 지난 일을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걸 보면 나도 꽤 상처였나 보다.)


당시 며칠동안 그 말이 생각나, 따로 불러서 얘기를 해야하나 고민했지만 악의가 없이 한 말인 것 같았고 계속 얼굴 볼 사이에 불편해지고 싶지 않아 그 친구는 나의 불쾌함을 전혀 모를 것이다.  남의 일을 폄하하면 본인의 가치또한 떨어진다는 것을.


지금 생각하면 아마 그 친구는 나의 직무가 뭔지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커리어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서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는 내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제대로 얘기를 할까 싶다.


더불어, 이 불쾌함에서 그치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남의 일을 깎아내리지 않기. 더불어 나의 일에 자부심을 갖기. 예순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일을 하시는 우리 엄마가 보내신 카톡 메세지를 다시 읽으며.

 





* 사진출처: UnsplashJason Go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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