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의 권고사직을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나요?
모두가 경기침체를 온몸으로 느끼는 이 시기.
스타트업 또한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시리즈 A를 투자받은 50여 명이 근무하는 스타트업이다. 나는 투자를 받고 약 세 달 정도 나름 호황기 때 들어왔다. 실무진, 임원 면접을 마친 후 최종 대표와의 1:1 면접에서 밑져야 본전이지하는 마음으로 제시한 연봉을 맞춰줘서 기존 직장보다 연봉을 올려 입사할 수 있었다. 내가 입사하던 즈음에 여러 복지가 생겨서 "오 스타트업 좋은데?" 하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고용계약을 했다. 그렇게 입사한 지 약 10개월 차가 되던 때, 차츰차츰 회사의 분위기가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돈을 벌어오는 우리 팀의 어깨가 날로 무거워졌고, 새해가 바뀌어도 연봉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힘든 시기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언제까지 이렇게 야근을 일삼아야 하는 가 팀원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었다. 부서 간 개편도 너무 잦고 십여 명이 있는 우리 부서는 서너 번의 팀개편이 지속돼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약 2주 전. 외근 가는 버스에 있던 중 회사 협업툴에 새로운 메시지 알림이 울려 습관적으로 버튼을 눌렀다. 대표가 남긴 긴 글이 띄워졌다. 바로 권고사직에 대한 공지였다. 내용의 요지는, '회사 상황이 나빠졌고 최후의 최후까지 피하고 싶었던 권고사직을 집행할 수밖에 없게 됐다. 조직의 1/4 정도가 대상자. 모든 것이 대표 본인의 탓이며 대상자들에게는 오후 중에 안내가 나갈 것이니 떠나는 이에게도 남아있는 이에게도 미안하다'는 글이었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외부 기관과 협업하는 그날의 업무는 차질없이 수행해야만 했다. 외근 중 공지에서 일러준 시간이 돼서 메일함에 들어갔다. 경영지원팀에서 온 메일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 들어간 스팸함도 비어있었다. 하지만 불안했고, 메일이 순차적으로 오는 거라면 늦은 시간에 보낼지도 모르니 퇴근할 때까지 30분마다 메일을 새로고침했다. 저녁이 됐고 여전히 새로운 메일은 없는 거 보니 나는 그 1/4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 같았다. 모두가 예상치도 못한 공지였기에 항상 시끄럽던 팀 메신저 방은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와중에 한 동료에게 본인은 대상자가 됐다며 이렇게 회사를 떠나게 될 줄 몰랐다는 톡이 왔다. 너무 당황스러워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누가 누굴 위로하냐 이 말이다. 다른 통료들을 통해 어떤 사람이 퇴사하게 됐는지 알게 됐다. 우리 팀에서는 무려 네 명의 대상자가 있었다. 1월 우리 팀과 대표와의 간담회 때, 혹여나 권고사직을 한다고 해도 우리 팀은 대상이 아닐 거라 했는데... 정말이지 이게 스타트업인가. 싶었다.
회사의 경상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재택근무를 시작하자마자 권고사직이 시행됐는데, 그 안내 방식이 무척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고사직이 있던 2주가 지났음에도 나는 우리 회사의 누가 퇴사했는지를 모른다. 알음알음 또는 협업툴에 이름이 없는 걸 보고 떠난 이를 추측할 뿐이다. 50여 명의 규모에 비해 경영지원 인력이 극소수인 회사여서인지, HR담당자의 부재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스타트업이 살아남기 위해 당연히 시행한다는 권고사직.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오래된 조직에 있던 내게는 생각해보지 않은 옵션이었다. 스타트업 입사 10개월 차에 아, 내가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구나. 를 실감하게 된 날이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은 내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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