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벚꽃처럼 피었다가 지는 정의 인가?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많은 변화와 일들을 겪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는 무엇이며, 올바른 도덕정신은 무엇인지,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현상들에 의해 이런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조직이란 그리고 사회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삼권 분립은 민주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조직 구성원을 위해서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지, 또한 지금의 현상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 안에서 시대정신으로 남고 보편적 진리로서 남을 수 있는가의 고민들과 함께 올바른 현상인가에 대한 문제도 고민하게 된다.
대한민국 사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적폐 청산은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이루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시대정신이 작용을 했는지도 살펴봐야 하며, 이후 터진 #미투 운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방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 무엇이든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이야기 하기는 쉽다. 큰 강에 배를 띄워 하류로 자연스레 흘러 내려가듯 아무 의심 없고 고민 없이 지금의 흐름에 정신과 몸을 내 맡겨 남들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같은 느낌을 가지며 누군가를 비판하기는 쉬우나, 과연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의 변화하는 대한민국 사회에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가지 팬덤 현상들과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내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자칫 잘못하면 후에 더 큰 폭풍으로 사회 전체가 붕괴되는 현상으로 치달을 수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현상에 대해서 시대의 정의와 보편적 정의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올바른 눈으로 바라 보고 해석하여 진정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이념과 가치를 찾아내서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개인들이 자신의 가치를 벗어던지고 진정 사회를 위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전체를 위한 눈과 생각을 가져서 행동하여야 한다. 우리가 속한 사회를 위해 한번쯤은 생각하고 가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 본다.
첫째 대한민국 사회는 사회는 보편적 정의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무엇인가?
둘째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대표하는 시대 정의는 무엇인가?
셋째 지금 사회의 도덕기준은 무엇이며 그 적용은 어떻게 되는가?
넷째 도덕과 정의는 같은가?
다섯째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나가야 할 것인가?
'첫째 대한민국 사회는 보편적 정의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 여기서 우리는 보편적 정의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하며, 보편적 정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봐야 한다. 보편적 정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선 이 문제를 들여다보려면 두 가지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 먼저 보편이란 무엇을 뜻하며, 정의란 무엇을 뜻하는지, 그러고 나서 우리는 보편적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 일반적인 것, 누구나 알고 있으며 누구나 가질 수 있으며 일부 특정한 상황이나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거나 표현하지 않는 것? 또는 평범한 것이거나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인정하며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대응하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갖는 것 등의 다양한 의견과 내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보편성이라는 문구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개별 사물이나 개별 개체가 가지는 공통되며 일관된 특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멜론빵, 호밀빵, 식빵 등의 빵 종류의 물건들이 가지는 보편성은 음식이라는 먹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는 2G 폰 유선전화 스마트폰 등이 가지는 보편성은 통화하는 것이라는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 즉 개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유사한 그룹을 형성할 때 그룹 안에서 가지는 공통된 특성을 보편성이라 보면 될 것이다. 이런 보편성의 특징은 먼저 외부의 변화에 반응하지 않는다. 먹는 것, 통화하는 것, 입는 것 등의 보편적 특성은 개체나 사물이 가져야 하는 필요조건으로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즉 보편성이 결여되면 그 개체나 사물이 가지는 원래의 특성이 사라져서 사물로서 특정 그룹의 개체로서 존재하지 못한다. 이는 철학적으로 칸트와 헤겔의 변증론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보편성은 대한민국 국민이 가지는 공통된 사고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일부는 그 공통된 인식 즉 보편성에 대해서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 닫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는 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규칙과 공통성에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 또한 공동체의 보편성에는 합의를 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보편성이 현재 법이거나 공식화된 룰은 아니다. 각 개인이 다른 개인과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합의되는 기본권을 말한다. 기본권이란 서로가 서로의 사유권(다른 표현으로는 '자유권' 또는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서로 간의 합의된 사항에 대해 피해를 주지 않으며, 공동체의 외부 위험요소에 대해 저항하거나 내부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한 사항들을 기본권에 포함한 합의 사항으로 볼 수 있다. 법이나 규칙들은 이러한 기본권을 보호하고 사회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세부적인 사항들을 공식화한 것으로 보면 된다. 이념이나 사상 그리고 체제 등의 다양한 문제들은 기본권을 유지해 나가는 방법들이며, 이는 기본권과는 다르다고 봐야 한다. 그러한 다양한 것들은 보편성과는 틀리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의 보편성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면서 최초에 합의되는 기본적인 것이다. 법이나 규칙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하며, 헌법 또한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변한다. 설명했듯이 보편성은 외부의 변화에 반응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한다. 즉, 이념 체제가 보편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초가 되는 사유권, 상호 불가침, 행복추구권 등에 대한 부분이다.
그럼 '정의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정의는 누군가의 정의가 될 수도 있으며, 전체의 정의도 될 수 있다. 정의는 어떠한 상황에 대해서 올 바른 것이라 규정할 수 있다. 그럼 올 바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길을 가는데 어느 지점에서 두 갈래의 길이 나왔다. 어느 쪽이 올 바른 길일까? 우리가 어떤 목적지를 가는 데 있어서 바른 길을 가야 하는데, 그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 오른쪽 또는 왼쪽이 올 바른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의 또한 마찬가지이다. 갈림길처럼 상황에 따라 무엇이 올 바른 것인가? 에 대한 문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정의는 이것이다 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전쟁 중인 두 나라가 있다. A국이 B국을 침략해서 전쟁이 벌어진다고 가정하자. 만약 A국이 침략의 이유가 갑자기 닥친 재난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국민이 전부 아사직전이고, 죽을 위기에 처해져 있었다. 그래서 B국에서 도움을 주면 A국은 어려움을 면할 수 있는데, 당사자인 B국은 음식이나 자원이 썩어 남아 가도 A국을 도울 마음이 없다. 그래서 A국은 최후의 수단으로 B국을 침공해 자원과 음식을 가져오기로 결정하고 전쟁을 치른다고 하면, 여기서 정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A국의 입장에서 옆에서 썩어 남아도는 음식을 보면서 국민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정의일까? 아니면 국민들을 위해 다른 사람의 소유를 강제로 뺏는 게 정의일까? 자 그럼 B국의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르다. B국이 A국을 도와주지 않는 이유는 기후와 지각변동 등 불안정한 미래 때문이다. B국은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5년 또는 10년 불 규칙 하게 재난을 당해 왔고, 그때마다 국민의 50% 이상이 식량난으로 죽고 힘들어했다. 그리고 마침 지금은 불 규칙 하지만 재난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약을 위해 자신들의 자원과 식량을 비축해야 했으며, 미래를 위해서는 A국을 도와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B국은 자국민을 위해서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지만 언젠가 올 미래를 위해 항상 여류롭게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B국이 A국에 대해서,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지만 곧 닥칠 것 같은 재난에 대해 대비하지 않고 A국을 도우는 게 정의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의 식량과 자원을 비축해 놓는 게 정의인가? 즉 정의란 것은 어느 정도는 상대적이며, 그것을 느끼는 당사자들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안전과 미래 그리고 보다 나은 것을 위해 선택하는 게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상대적 정의의 개념이다. 즉 정의란 것을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 확장을 하고 보다 넓게 사람이라는 종의 공동체로 확장을 하면, 사람 즉 인간이라는 종이 자신들에게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행동이나 생각 그리고 상황을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개나 고양이 그리고 다양한 애완동물들을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 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개나 고양이나 기르던 애완동물들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그들 본연의 모습인 야수성을 찾아서 공격을 할 경우 우리는 가차 없이 죽이거나 억제한다. 이 경우도 개나 고양이 등의 애완동물들은 자유와 기본 속성을 억제당하면서 애완동물이 된 것이다. 그들이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야수성을 인간들의 위험에 대처한다고 해서 죽이는 우리의 모습은 정의로운 것인가? 만약 죽이는 것이 정의라면 애완동물을 기르지 말고 차라리 공동체와 분리해서 놔두고 서로 격리해서 사는 게 더 올 바른 정의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애완동물로 만들기 위해 거세를 하는 것이 정의인가? 그것을 다른 눈으로 봤을 때, 그들에게는 자유를 억압당하고 정신과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 그런 행동들을 하고 있다. 과연 이것도 정의인가? 이런 질문에 원론으로는 많은 분들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공존을 위한 선택으로서 인간 사회 내부에서 이것은 올 바른 행위로 여겨지며,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의 정의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정의는 선택의 문제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결과에 대한 개인 또는 공동체의 올 바른 선택이다.
이제 '대한민국 사회는 보편적 정의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보편적 정의란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공동체가 형성이 되면서 그 구성원 대다수가 합의했으며,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들을 수호하며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나 생각을 대한민국 사회의 보편적 정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보편적 정의가 존재한다. 이것은 대한민국 사회의 보편적 정의만은 아닐 것이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모든 인류의 정의가 될 것이다. 어쩌면 공리주의 입장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사회계 약주의자 입장이 될 수도 있다. 공동체의 형성의 목적은 공동체 개체에 대한 보호에 있다. 공동체 자체의 보호 때문에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즉 공동체는 살아가는 방법과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보편적 정의는 그 구성원 각 개인들의 공통된 정의다.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들의 공통된 정의는 무엇인가? 먼저 각 개인의 사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의, 두 번째로 각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정의, 세 번째로 각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보다나은 삶을 위한 정의 이렇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째로 우리 개인의 사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의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각 개인들의 사유권을 보장 받기 위해 어떠한 것을 정의로 내세우고 있는가? 사유권보장은 개인이 태어나면서 가지는 자유와 공동체내의 다른 개인들로 부터 인정되어진 물적 심적 소유물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태어나면서 받은 나의 신체, 정신, 살아가면서 소유하게 되는 각 개인들의 소유물을 서로간의 합의를 통해 그 사유권을 보장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구체적인 법을 세우고 다수의 합의에 의해 공통된 의견으로서 확립한 것이다. 그것을 헌법이라는 기초 법률에 사유재산권 보장과 개인의 신체 정신의 자유권에 대한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두 번째로 각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정의는, 개인은 다른 타인을 공격하거나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합의이다. 여기서 타인을 공격하거나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그리고 사회 시스템을 통해 공격하거나 압박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를 주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정의로서 합의했다. 그리고 공동체 외부의 적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응을 한다는 전제를 정의로서 합의한 것이다. 헌법에서는 공동체의 국토방위와 안전보장을 합의로서 명시하고 있다. 세 번째로 행복을 추구하고 보다나은 내일의 삶을 꿈꾸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정의이다. 공동체내의 어떤 개인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공동체를 형성해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건, 개인의 행복을 보장받고 혼자였을때 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불행한 미래를 위해 살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미래에는 지금의 현실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아래, 소속된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한 내용은 헌법에서 양심의 자유와,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권리등의 내용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보편적 정의는 법률로서 그리고 사회적 합의로서 존재한다. 보편적 정의는 불변의 정의는 아니다. 사회가 변하고 가치고 변함에 따라 정의의 큰 물줄기도 변한다. 그러나 보편적 정의는 가볍지는 않다. 하나의 사회를 대표하고 그 사회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주 바뀌지는 않지만 큰 패러다임이 바뀌거나, 공동체가 새로운 이념이나 가치를 내세우고 따를때 보편적 정의는 변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는 보편적 정의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보편적 정의는 지금의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인간이라는 근본적 존재에 대해서 가져야 될 합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 합의는 구성원 개인에 대한 보호와 개인의 이익 극대화에 맞춰져 있다. 보편적 정의는 철학이나 종교등에 나오는 불변의 진리와 다르다. 그건 그 사회의 보편성에 맞춰서 형성되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다음 장은 '대한민국 사회를 대표하는 시대정의는 무엇인가?' 이다. 시대정의는 보편적정의와는 또 다른 가변의 정의이다. 시대정의는 보편적 정의처럼 큰 패러다임보다는 시대의 사건에서 영향을 받는다. 지금의 시대 정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변화를 가졌으며, 특히 지금과 같이 정보의 공유가 빠르고, 다양성이 확보되는 시기에는 그 변화가 더 빠르게 다가온다. 이에 대해 급변하는 시대정의의 의미와 내용을 다뤄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