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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이 May 26. 2016

34. 무제, 내 앞에 까마득한 침묵이 돌아올때마다

내 눈이 적셔지는 순간들을  기억하자.

2015년 5월  8일.


 저녁 9시, 헬스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 데 트레이너이자 친한 동생의 남자친구가 멀끔한 모습으로 짠하고 나타났다.

부러웠다, 부끄러웠고

이틀 동안 7시간 잤다. 피부는 당연히 엉망이고, 화장기는 하나도 없다. 운동복 차림에, 웨이스트 백, 무릎이 나온 바지, 오래된 자전거가 내 곁에 있을 뿐이었다. 문득, 10시 반에 있을 온라인 스터디와 인터넷 강의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이 금요일이란 사실은 조금 전에 알아차렸었다.


날은 너무 좋았다.    


  신교육사회학에서 저항이론 중 윌리스의 간파이론이 있다. 노동자 계급 아이들은 거칠고 가부장적인 행위를 저항(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자신들의 부모의 문화인 노동계급 문화를 고수한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를 "싸나이"로 부르며, "싸나이들"(노동계급 학생들)은 학교문화에 순응하지 않고 반학교 문화를 형성(패거리를 만들거나, 반항하는 것)하는 것이 학교생활에서는 실패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는 육체노동직을 선택하고자 한다. 이를 일컬어 저항이론, 간파이론이라고 한다.


  요새 말로, ‘흙수저’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이해가 될까, 우리는 우리들이 스스로 ‘흙수저’임을 알아차린다. 어차피 노력해도 높은 위치에 오르지 못할 거라면 우리는 우리만의 문화를 추구하며, 기존 문화에 대항한다. 이것이 서구 산업시대에 노동자 계층의 아이들이 선택했던 방법이다.     


무제, 앉아있는 노동자 -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자전거를 타고 가는 데 벤치에 50-60대 남자분이 앉아계셨다.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모자 옆으로 보이는 머리는 희끗했다. 옷은 흐드러지고 낡아 있었다. 허름한 워커와 같은 신발은 이상하게 내 눈에 멋있어 보였다. 달 아래 흐드러지게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정말 낭만적이었다.


내 몸에는 분명 "싸나이"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공부를 안했다면, 땀을 흘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일하면서 흘리는 땀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멋진 일인지 나는 우리 부모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 또한 역시 노동자계급의 아이들 중 하나인 셈이다.    


나는 저항이론 대신 타협을 선택했고, 말도 안되는 공부를 몇년 째 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멋진 그를 올려다보았을 땐, .....  그런 멋진 분이, 커다란 손으로 벅벅 얼굴을 힘차게 문지른다. 눈이 참으로 많이 충혈되어 있었다.  눈이 시뻘게지도록 울고 계셨다.

  헝클어진 머릿칼과 옷가지, 일그러진 눈과 입에 시커먼 손을 가져다 빡빡 문대고 계셨다.


  내 몸에는 분명 "싸나이"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때마침 이어폰으로 울려 퍼지는 노래는 the verve-bitter sweet symphony,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생은 쓰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교향곡'  그리고 오늘이 어버이날이라는 사실을 또 한번 알아차렸다.


'하...악'


  자전거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며 하마터면 뒤로 쓰러질 뻔하였다. 오랜만에 마음이 세차게 요동쳤다. 하마터면 그와 함께 나도 엉엉 울어버릴 뻔 했다.


..더욱 더, 생각하자.

바라자.

 내가 느낀 그 느낌에 대해서,

그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         


  그러니까 내 눈앞에 까마득한 침묵이 돌아올 때마다, 내 눈이 적셔지는 순간들을 찾아 내어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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