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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이 Jul 12. 2016

36. 나는 곧 죽어도 당분간 글을 쓰면 안 되겠다.

나에겐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몰두할 시간이 없다.

쓰라는 글은 안쓰고,     


쓰고 싶었던 글이 있었다. 그럼에도 꾹꾹, 마음 한편에 꾹꾹 담아 놓고서 고작 쓴 글이란 것이 내가 다니고 있는 학원의 후기였다.  (회피일까)

공부는 하기 싫었고, 후기를 쓰면 상점을 받아, 그 상점으로 가끔 지각을 해도 되고, 실장님의 부탁도 있었고, 못해도 쓰기만 하면 라면 한 사발 준다기에 무심코 썼던 글이 전국 26?개 지점 중 1등으로 뽑히게  되었고 (물론 모든 학생들이 글을 쓰진 않았지만.) 덕분에 학원 대표와 인사까지 나누게 되었다. 여차저차해서 원장님은 우리 학원 학생들에게 통 크게 피자와 통닭을 지불했다. 물론 난 따로 상품도 받았다.     


그러니까. 내 삶의 판도는 몇 달 새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에겐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몰두할 시간이 없다.


그렇게 좋아하던 무한도전도 못 보고, 음악도 못 듣고, 잠도 줄여야만 했다. 점심시간, 저녁시간에도 공부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내가 했던 쓸데없는 나 자신과의 약속 때문에, 온종일 스톱워치에 신경 쓰고, 시간을 붙잡으려 노력해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의도치 않게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일들을 마주칠 때에도,     

떠오르는 글들의 내용을 적고 싶어도, 그럼에도 나에게 돌아오는 탐탁지 않은 내 스스로의 시선 때문에 나는 쓰지 못했다.     


네가 보고 싶어도 문제를 풀 때마다 드는 좌절감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실패로 점철된 것 같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네가 생각났지만 그럴 때일수록 부끄러워서,     

내가 아플 때마다, 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프다는 사실을, 그것을 인지할 때마다

지금 내가 하는 노력이 어떤 사람에게는 10분의 일도 안 된다는 사실을 경험할 때마다      

내가 너에게 했던 나의 행동에 스스로 아팠으므로, 그러니까 나는 당신을 볼 수 없었다.     


일기장에 꽂혀진 너의 편지를 매일 마주할 때에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너의 글씨체를 보고 싶어도 나는 내가 했던 나의 행동들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어 아무 말도, 어떤 글도, 심지어 생각하고, 보는 것조차 다 차단해버렸다.     

요 며칠 함께 공부하는 녀석이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고 그렇고 그런 사실을 내가 알게 되었고, 하필 그걸 내가 막아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에도, 내가 그 녀석에게 했던 말은 "지금은 안 돼"였다.      

"왜 안 돼요? 그게 그렇게 나쁜 건가요?" 도돌이표처럼 나에게 돌아온 질문에 대한 답은 나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도전하는 중이잖아.. 공부는 머리로 하는 거고, 그게 가슴으로 느껴지는 일인데, 누굴 좋아하면 그것도 머리로 하는 거고, 가슴으로 하는 건데, 그러니까 공부가 되겠어?"

     

그렇게 뱉고 나서, 나는 내가 했던 나의 행동들에 대해 설명할 하나의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죽순들이 잊을만하면 가슴에 솟아오른다.  그건 분명 당신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오랫동안 당신은 나에게, 단 하나의 마주침을 바랐었는데, 나는 해 줄 수 없었고, 비겁했다.     


그러니까 나는 당분간 글을 못 쓸 것 같은데,

글 역시도 마음으로 하는 일이니까.

정말 난 당분간 글을 못 쓸 것 같다.     

나는 결국 네 생각에 어쩔 수 없을 때마다 수화기를 들어,


내 오래된 친구에게 전활 걸고선

"모르겠다. 모르겠다.. 친구야 그치만.. 알고 있는걸. 근데 친구야, 그치만..그치만.." 이라고 중얼중얼거릴 뿐이었고, 친구는 내 말을 잠자코 듣더니,

 

"더 힘내"라는 말로 내 답을 대신했다.     


글을 쓸 때마다 내 가슴은 성난 파도처럼 요동치니, 그때마다 당신이 생각나서, 당신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곧 죽어도 당분간 글을 쓰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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