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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미 Jul 27. 2022

이 계절을 기억할 노래 하나

ep116 전진희 - 여름밤에 우리(feat. wave to earth)


"웬일이래, 갑자기?"

비가 축축하게 내린 후 그친 저녁, 불쑥 그의 동네로 찾아갔다. 꽤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웬일은. 나 너랑 노는 거 좋아하잖아?"

"어이구."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요샌 무슨 노래 들어?"

"비슷해. 다 예전에 듣던 걸걸?"

비가 그친 도로를 달리는 친구의 차에서 나오는 노래는 여전히 비슷했다.

미디엄 템포를 넘지 않는 박자, 귀가 울리지 않는 잔잔한 비트, 가수의 목소리를 덮지 않을 만한 크기의 반주.


"네 노래 취향도 진짜 한결같다."

"너도 이쪽 취향이잖아. 뭐 잔나비라던지, 카더가든이라던지, 좋아하잖아?"


"그거 알아? 사실 난 EDM도 좋아해.

요즘엔 이 노래도 엄청 들어."

나는 그의 폰을 켜고 요즘 자주 듣는 노래를 검색해 재생했다. 그의 차에선 도통 나올 일이 없을법한 싱잉랩이 흘러나왔다.


"...난 사실, 네 취향을 가끔 이해 못 하겠어."

"내 음악 취향이 너보다는 좀 더 대중적이라는 뜻이야."

"맞다야."

매번 누구의 음악 취향이 더 대중적인가를 논할 때면 본인은 상당히 대중적인 편이라며 극구 부인하던 그는, 오늘은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도 덕분에 이 노래들을 들으면 너랑 처음 친해지던 작년 가을이 생각이 나지."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취향을 가진 친구를 달래며 내가 말했다.




"올해는 진짜 정신없이 가는 것 같은데도, 그 와중에도 기억할만한 것들이 꽤 있는 것 같아."


"난 올해가 반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크게 기억에 남는 게 없어."

"그래?"

"응."

귀에 익은 노래를 들으며 던진 화두에 그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너 올해 초에 자전거 국토종주 성공했잖아."

"그랬지."


"고양이도 키우기 시작했잖아."

"그렇지."


"프리랜서도 잘 시작했고."

"뭐... 일단 시작하긴 했지."

그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난 예전에 한 해가 일 년 내내 신나고 재밌는 걸로 넘쳐나야 그 해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았거든.

근데 기억에 오래 남았던 해들을 생각해보면, 어떤 해가 나에게 강렬하게 기억되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더라고.


커다란 에피소드 세 덩어리.

그리고, 그 해를 기억할 노래 하나?"



"에피소드 세 덩어리에 노래 하나라..."

그는 잠시 공감하는  끄덕이다 이내 말했다.

"그래도,   덩어리 할래."



"네 덩어리면, 그 해는 대박이지."




"나는 네가 여름 같아."


"그래?"

그와 만나면 늘 그렇듯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응. 생각해보니 우리가 친해진 건 작년 가을부터니까 한 번도 같이 여름을 보낸 적이 없는데,

왜 널 만나면 여름 같다는 느낌이 들까?"


글쎄, 항상 산 타고 자전거 타느라?

그가 실없이 대답했다.



"난 한 해 중에 여름의 기억이 제일 풍성해.

예전에는 그게 단순히 '여름엔 활동을 많이 하게 되니까' 하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얼마 전에 알았어. 여름엔 낮과 밤에 어울리는 노래가 너무 다르다는 거."


차에서는 다시 익숙한 그의 플레이리스트가 흘러나왔다. 비가 그친 여름밤에 어울리는 노래였다.



"생각해보면 낮과 밤이 각자 다른 노래가 어울리는 계절은 거의 없잖아?

겨울은 낮에도 춥고 밤에도 추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느낌이나 좀 쓸쓸한 노래가 어울리고. 봄, 가을도 낮과 밤 둘 다 선선하니 크게 다르지 않고.


여름의 낮은 신나고 밝은 노래, 레게에 심지어 EDM까지도 어울리잖아.

반면 여름의 밤은 이런 노래가 또 기가 막히게 어울리고."


https://youtu.be/_BouCVTQ5c8

전진희 - 여름밤에 우리 (feat. wave to earth)


"여름엔 하루의 여러 시간을 더 다양한 느낌으로 기억하게 돼.

그래서 이 계절의 기억이 유난히 풍성한 것 같아."


"너도 여름 같아."

그가 말했다.


"봄이랑 여름 그 사이.


맞아, 딱 초여름 같아, 넌."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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