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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Jun 01. 2024

한 번에 바위 하니씩, 세븐 매직 마운틴

함께할 때 우리는 위대하다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0443


로스앤젤레스에서 15번 고속도로를 따라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할 즈음,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거대한 석회암 토템 일곱 개가 눈에 들어온다. 3개에서 6개까지 돌을 쌓아 올린 설치물은 초자연적이면서 동시에 뜬금없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각 돌은 서로 다른 형광색을 자랑한다. 스위스 예술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가 2016년 제작한 세븐 매직 마운틴(Seven Magic Mountains)이다.

끝없이 이어지던 사막에 무뎌질 무렵, 이 조형물로 인해 사막은 다시 황량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대지 예술과 팝아트를 합쳐 놓은 듯한 예술 작품 앞에서 우리는 잭팟이 아니라 다채로운 돌멩이를 통해서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세븐 매직 마운틴은 당초 2년만 전시할 계획이었다. 라스베이거스로서는 좋은 관광 명소 하나를 잃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관광지 하나를 잃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라스베이거스는 사막 위에 세워진 화려한 인공 도시다. 세븐 매직 마운틴 역시 사막 위에 세워진 인공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분신과 다르지 않다. 카지노를 넘어 이제는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산업 메카로 거듭나려는 라스베이거스는 전시 연장을 추진했고, 세븐 매직 마운틴은 여전히 사막 위에 건재하다.


라스베이거스는 네바다주에 속한 내륙 도시다. 태평양에 인접한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는 캘리포니아주에 속해 있다.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하나 있다. 바로 노숙인이다. 화려한 밤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노숙인은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다. 경찰에게 잡혀 구금되지 않으려고 지하 수로에 숨어 산다. 라스베이거스는 2020년부터 노숙자 지원센터나 다른 비영리단체가 제공하는 숙박 공간이 있음에도 도심이나 주택가 인도 같은 공공장소에서 노숙하는 행위에 대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1천 달러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당시에도 도시에서 노숙인들을 내쫓으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일었다.


존재에는 높고 낮음이라는 계층적 사다리가 없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계층적 사고가 아니라 관계망식 사고가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이 지은 작은 관계망이, 주고받는 나눔이 그리 대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관계망이 받쳐 주는 사람에겐 모든 것일 수 있다.


관계를 맺는 순간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가 된다. ‘부적합자’라는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코로나19 여파로 직장을 잃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월세와 물가로 살 집을 구하지 못한 노숙인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이웃이었고, 사회를 위해 땀을 흘리던 사람이었다. 계층적인 시선으로 보면 알 수 없지만, 관계망이 수놓은 수많은 공간 속에서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피를 돌게 하는 존재들이다.


인류는 마음을 나누는 공감과 협력을 통해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인간종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서로의 벽을 허물고 다른 사람과 정서를 공유하는 능력을 키워 왔다. 바로 상호성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 없이 나의 행복은 없다는 얘기다. 최소한 나의 현재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어떻게 사막 한가운데 세워졌을까? 세븐 매직 마운틴은 어떻게 그곳에 나타났을까. 답은 하나였다. ‘한 번에 바위 하나씩’. 두 인공물의 위대함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험난한 과정을 많은 사람과 함께했다는 데 있다. 함께할 때 우리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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