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천사를 보여다오.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다.” 사실주의 화가 쿠스타브 쿠르베를 대표하는 이 말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화된 세계에만 관심을 두던 당시 세태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장 프랑수와 밀레와 오노레 도미에도 같은 생각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주류 사회가 관심을 두지 않던 비참한 농촌 환경과 열악한 노동자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경험하지 않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는 사실주의 원칙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보이는 것 넘어 숨겨진 이면을 어찌 정확히 알 수 있단 말인가. 내 이야기를 쓰자. 아니 에르노는 자전소설로서 여성 개인의 글쓰기를 전 세계 문학의 중심으로 역류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넬리 아르캉은 『창녀』에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적나라하게 기술하여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자전소설이 갖는 진실성과 진실에서 나오는 전달력은 내가 김유태의 금서기행 『나쁜 책』에 나오는 30편 책 중에서 『창녀』를 고른 이유다. ‘나는 창녀로 운명 지어진 거나 다름없’다던 넬리 아르캉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가둔 완고한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글쓰기는 죽음 충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지만, 매 순간 죽음을 경험하는 인간의 한계를 동시에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인간은 스스로 비극을 극대화하는 심리적 충동에서 자유롭지 못한 법이다. 자신을 부정하다 결국 자기 자신까지 내던지고야 말았던 작가 넬리 아르캉의 비극적 죽음은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한 개인이 겪은 역사가 한 시대를 움켜쥐는 보편성을 획득할 때, 자전소설은 단지 개인의 일기가 아닌 시대의 일기가 됩니다.”(Page 216)
『창녀』는 처음부터 책 출간을 계획하고 집필된 글이 아니다. 정확히는 넬리 아르캉이 자신과 상담 중이던 한 정신분석가에게 보내는 글이었다. 넬리 아르캉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했다. 쓰고 또 쓰고, 끊임없이 반복했다. 가치는 반복에서 나오는 결과일 뿐이다. 나 역시 글쓰기가 유일한 숨구멍일 때가 있었다. 나는 읽고 쓰기를 반복했을 뿐, 처음부터 졸저 『나는 사랑을 걱정하지 않는다』라는 가치는 알지 못했다.
김유태는 매일경제신문 문화부 기자로 매일 자신과 독자를 충격하는 나쁜 책을 기다린다. 기자를 충격하지 못하면 독자를 충격할 리 없다. 금서기행 『나쁜 책』은 매일경제에 쓴 기사를 모은 책이다. ‘기사’라고 인식하고 보니 글의 구조가 새롭다. ‘기사’라는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문장이다. 얼마나 흥미를 끄냐에 따라 기사의 성패가 갈린다. 기사는 일반적으로 전문, 본문, 후문으로 작성된다. 전문에서는 전체 기사의 핵심을 요약한다. 간단히 작성하고 관심을 유도한다. 본문에서는 전문에 대한 보충 설명이 이어진다. 사건 배경, 원인, 결과 경위, 전망 등이 포함되고, 정보 전달력과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통계, 일화, 인용문을 이용한다. 후문에서는 앞으로의 전망과 시사점, 후속 관전 포인트를 제시하며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