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보다 진실이 더 정직하다는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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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유럽 사회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었다.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도 다양한 사조가 등장했다. 바깥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비엔나는 유럽이 지켜온 구체제의 끝자락을 애써 붙들고 있었다. 왈츠가 넘실대고 연극과 문학으로 포장된 도시는 일면 풍요로웠지만 커튼 뒤에서는 무기력하고 분열된 사회의 모순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고목에서 새싹이 피어나듯 중세 이후 유럽을 지배해 온 합리적 인간에 대한 저항으로 심리적 인간에 대한 관심이 피어났다. 그 모순의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들 수 있다.
클림트의 주된 관심은 여성이었다. 아카데미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여성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만나면 에로틱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릴 수 있는 것은 그릴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성을 탐닉하는 인간에게 관능미 넘치는 여성의 몸은 어느새 하나의 권력으로 동작한다. 현실에서 권력은 타락하고 결국에는 종말을 맞듯 벗은 몸은 퇴폐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성은 죽음의 유혹이라는 악으로 치부되어 사회로부터 금기시되었다.
클림트에게 성에 대한 애착은 자신의 진실이면서 인간의 보편적인 진실이었다. 진실 앞에서 솔직했던 클림트는 성적 주제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에로티시즘을 극한으로 밀고 간 클림트만의 독특성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혁신적 위치에 올려놓았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여성은 단순히 에로틱한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성에서 비롯되었고, 성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다. 성을 통해 자연이 인격화된 모습으로서 여성이라는 존재에 눈을 뜨게 된다. 클림트가 표현한 여성은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고 생동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여자 친구들, 1916~1917
클림트가 관능적으로 묘사한 인체의 선은 추상적인 장식적 형태와 색채로 뒤덮여서 더욱 완벽하게 자연스럽게 보인다. 클림트에게 육체의 형태와 장식은 자연스러움과 양식화 사이의 대조를 통해 연결된다. 이러한 대조는 감춰진 것과 드러난 것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장식적 은폐 방식은 힘든 현실을 가려주는 미학적 장치로 보이지만, 감출수록 드러나는 게 세상 이치다. 클림트는 평범한 육체를 장식적 암호로 변형시킴으로써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욕망과 고통을 드러나게 했다.
클림트를 이어 비엔나 미술을 대표했던 화가는 에곤 실레였다. 독특한 구도로 신체를 왜곡한 표현은 인간의 관능적 욕망과 실존에 대한 불안을 거친 윤곽선과 색채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보다 차별과 폭력으로 일그러진 세상의 이면을 그리는 것이 실레가 찾은 진실이었다. 실레보다 스물여덟 살이 많았던 클림트는 실레의 드로잉을 보고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활력을 느꼈다. 사실보다 진실이 더 정직하다는 각성이 주는 힘이었다. 실레의 작품은 조형적으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고 느껴지던 미술 세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실레는 사랑했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금전적인 어려움은 어머니와 불화로 이어졌다. 실레는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가 되었고, 아버지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실레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세계로 빠져들어 우울증 상태로 침잠했다. 길을 잃은 실레를 구원해 준 것은 예술의 힘이었다. 예술은 어떤 인간이나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아무리 하찮더라도 주인공 자리에 세우고 탐구하면 아름다운 것으로 재탄생한다.
힘든 현실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발견하게 했다는 점에서 클림트는 후배 예술가들에게 구세주 같은 역할을 했다. 실레는 클림트의 예술 궤적을 따라갔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전통적 기법은 실레의 데생 재능을 다듬어주었지만, 실레는 클림트의 평면적이고 선적인 스타일에 훨씬 끌렸다. 생(生)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공포를 겪은 젊은 화가는 가면 뒤에 숨을 수는 없었다. 현실의 삶이 고통을 가리킬 때, 벌거벗은 몸이야말로 자아를 온전히 이해하고 탐색하는 극단적 방법이라고 여겼다. 해체되고 분절되고 절단된 몸이어야 했다. 누드 자화상은 실레가 자아를 묘사하는 중심 테마로 자리 잡았다.
실레는 거울 속에 비친 이미지를 그대로 옮기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초상화에는 저마다의 자의식이 담긴다. 거울에 비친 이미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기보다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려는 욕망을 생겨나게 함으로써, 이 새로운 자아를 그림으로 그리게끔 했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실레의 초상화 속에는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없었다. 불안을 직시하고 마주하려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누군가가 있을 뿐이었다.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실이 아닌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나운 대기 속의 가을 나무, 1912년
클림트의 장식적인 스타일은 실레의 그림에서 각지고 비실제적인 선들로 변모했다. 유기적이고 부드러운 곡선미는 사라지고 각진 선에 의해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공간의 장식적인 측면은 완전히 배제하고 단색 배경으로 처리하면서 중심에 자리한 신체는 더욱 도드라졌다. 실레의 선과 색채는 안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밀어내면서 드러나게 했다. 이러한 방식은 초상화는 물론 나무와 풍경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실레의 나무들은 고통의 충동에서 비롯된 실존의 서글픔과 덧없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실레는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관찰하는 자신의 내면 상태가 대상에 투영되도록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실레가 그린 나무는 인간을 닮았다.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도전과 혁신의 시대 ‘비엔나 1900년’을 다룬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다음 달 3일까지 진행 중이다. 세기 전환기 비엔나를 무대로 자유와 변화를 꿈꿨던 예술가 6명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림을 읽고 작가들과 그 시대를 읽고, 그 변화 속에서 ‘나’를 읽는 화삼독(畵三讀)을 하기에 알맞은 전시다.
※ 본 글은 <에곤 실레>(라인하르트 슈타이너), <에곤 실레 : 불안과 매혹의 나르시시스트>(장루이 기유맹), <클림트>(전원경) 및 전시 보도자료를 참고해서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