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은 조롱하는 대신, 작품을 사들였다!
http://www.newswel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78
"미국의 대중은 조롱하는 대신, 작품을 사들였다!” 인상주의 그림을 미국에 선보인 화상 뒤랑뤼엘이 미국과 프랑스의 반응을 비교하면서 한 말이다. 인상주의를 처음 접한 프랑스 대중은 조소를 퍼부었고, 인상파를 예술계의 애송이로 치부했다. 뒤랑뤼엘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인상파 화가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운이 좋게도 클로드 모네와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 화가는 오래 살았다. 덕분에 인상주의 그림으로 당대에 명성을 얻었고 월계관을 쓰는 수혜를 누렸다. 인상주의 그림을 비웃었던 비평가들에게는 가슴을 칠 일이었다. 비웃지만 말고 그림을 사놓았더라면 하는 탄식은 늦은 후회였다.
‘자연을 그리는 회화는 바로 그 현장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 밖으로 나간 젊은 화가 클로드 모네의 그림은 작업실 밖에서 시작되어 밖에서 끝났다. 모네의 이런 작품 방식은 오래된 회화 습관과 결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대상의 순간적인 양상을 놓치지 않으려면 빠른 붓질이 생명이었다. 바탕 위에 겹겹이 덧칠하는 방식은 물론 색채들을 혼합하고 어울리게 배치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세부 묘사에 신경을 덜 쓰면서 빠르게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야 했다.
클로드 모네, 〈수련〉, 1908년, 캔버스에 유채, 94.8 × 89.9 cm
주류층의 시선으로 보면 즉흥적이고 무질서한 묘사가 대부분이었다. 되는대로 그린 것처럼 불완전한 그림은 한순간의 ‘인상’ 일뿐 완전한 회화가 될 수 없다는 조롱이 넘쳐났다. 모네와 뜻을 같이했던 화가들은 용기를 잃지 않았다. 끊임없이 탐구했고, 서로를 응원하면서 기존의 인습에 비판적으로 맞섰다. 화가들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그리는가에 있어서 오로지 자기 감각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힘겨운 투쟁 과정에서 가지게 된 자유와 새로운 능력은 실로 가슴 벅찬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이 극적인 미술사의 흐름을 포용할 수 있는 곳으로 파리는 유일한 곳이었다. 15세기 피렌체, 17세기의 로마를 거쳐 19세기 파리는 미술의 본질을 토론하고 실현하려는 뜻을 품은 전 세계 미술가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인상주의는 험난한 과정을 거친 혁신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았고, 파리는 확고한 유럽 미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 미술가들은 파리에 와서 인상주의와 접촉하였고,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발견과 함께 기존 체제와 인습에 대한 저항자로서의 태도를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 그들의 지역적 특색과 정서를 더해 새로운 화풍을 발전시켰다. 인상주의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인상주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오는 2월 15일부터 5월 26일까지 더현대 서울 ALT.1에서 특별전 ≪인상파, 모네에서 미국으로: 빛, 바다를 건너다≫가 열린다. 모네의 <수련>, 알프레드 시슬레의 <빨래터>, 폴 시냐크의 <골프 주앙>, 르누아르의 <아랍 여인>과 같은 인상파 거장 39명의 명작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에서는 혁신적인 예술 운동이었던 ‘인상주의’가 대서양을 넘어 미국의 자연과 정서를 만나 재탄생한 과정이 조명된다. 윌리엄 메릿 체이스, 차일드 하삼, 존 싱어 사전트 등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미국 인상주의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독일과 북유럽의 인상주의 작품들까지 전시된다.
존 싱어 사전트, 〈캐서린 체이스 프랫〉, 1890년, 캔버스에 유채, 101.9 × 76.7 cm
‘화가들의 화가’로 불리는 존 싱어 사전트는 완벽한 데생 실력과 인상주의적 붓 터치로 여러 화가에게 모범이 되었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던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전트는 프랑스, 영국, 미국 등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작품 활동을 했다. 화가로서 인정을 받았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세태로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무한한 자연과 따뜻한 빛에서 삶의 위로를 얻곤 했다. 유럽과 미국 예술계의 가교역할을 했으며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존 헨리 트와츠먼, 〈옐로우스톤의 급류〉, 약 1890-1899년, 캔버스에 유채, 76.2 × 76.5 cm
미국 출신 화가 존 헨리 트와츠먼은 독일 뮌헨과 파리에서 공부하며 인상주의를 배웠다. 고향으로 돌아와 섬세한 색조로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포착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인상파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아름다움은 물론 문학적인 감상을 함께 담으려고 노력했다.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격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옐로우스톤의 급류>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격한 무엇이 있었다.
※본 글은 <서양미술사> (E. H. 곰브리치), <발칙한 현대미술사> (윌 곰퍼츠), 전시 보도자료를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