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을 기억한다

폭풍 칠 때, 찬 바람 불 때, 어스름할 때 이게 진짜 제주다

by 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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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 첫여름방학에 친구들과 제주도를 찾았다. 처음 들른 곳이 함덕해변이었다. 고운 백사장과 얕은 바다 밑 패사층이 만들어내는 푸른빛은 차원이 달랐다.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여행의 절반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제주를 찾았다. 대부분 휴식과 여행이 목적이었다. 간혹 제주에 출장이 잡히면 푸른 잉크 빛 바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4·3 사건을 주제로 제주를 떠올리기 시작한 건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은 이후부터다. 노벨문학상에 근접한 한국 작가의 최신작을 읽자는 취지에서 선택한 책이었지만 그 책은 나를 전혀 다른 제주로 데려갔다. 주인공 경하의 발걸음을 빌려 그동안 가보지 못한 제주 중산간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폭설과 강풍을 뚫고 닿은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민간인 학살과 살아남은 가족들이 당한 수난과 싸움의 기록이었다. 이후 제주 4·3 화가로 불리는 강요배의 예술산문 「풍경의 깊이」를 찾아 읽었다. 그의 그림 「젖먹이」 앞에서 나는 숨이 멎었다.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를 그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그 현장, 무장대와 내통한 사람을 찾는다는 빌미로 공권력이 자행한 학살의 장소-북촌 마을을 지도에서 찾으며 나는 제주를 다시 배웠다. 북촌은 함덕해변 바로 옆, 같은 조천읍에 있었다. 그 아름답던 해변의 그림자 속에 북촌의 비극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제주를 두 발이 아닌 한 발로 걸었던 셈이었다. 이번 추석 연휴를 마치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제주 4·3 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시가 후원하는 ‘제주 4·3 평화기행’에 참여했다. 제주 4·3의 역사적 현장을 둘러보며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을 생각하는 여정이었다.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그날의 진실을 목도했고 희생자를 기리며 묵념을 올렸다. 피신 도중 총에 맞아 희생당한 모녀를 형상화한 조각 「비설(飛雪)」은 하얀 눈밭을 뜻하는 백대리석의 원형판 위에서 아이를 감싸 안은 채 쓰러져 있었다. 선흘리 주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숨었다 학살당한 목시물굴,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는 글귀가 새겨진 「젖먹이」 그림-그 모든 풍경 위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폭풍 칠 때, 찬 바람 불 때, 어스름할 때’, 제주도는 자기의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아픔 하나는 무심한 인간을 깨우기 위한 신의 구상일지 모른다. 백 명 또는 천 명의 아픔은 생명을 하나의 도구로 대상화한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하지만 만 명, 삼만 명의 아픔은 인간의 광기 말고 달리 말할 길이 없다. 살아남은 자에게 반복되는 악몽은 그 끝을 알기 어렵다. ‘아픔을 통해 각성한다’라는 아픔의 참뜻은 제주 4·3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제주 4·3은 한 개인의 상처가 아니라, 섬 전체가 겪은 역사적 비극이다.


제주 4·3의 아픔은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 국가 폭력이 어떻게 일상을 파괴하는가를 묻는다. 따라서 그 아픔은 각성의 도구가 아니라 각성이 멈추는 자리여야 한다. 이성의 언어가 침묵하고, 단지 인간으로서의 존재의 부끄러움과 연민만이 남는 자리다. 그 앞에서는 “깨닫는다”보다 “기억한다”가 더 어울린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현재의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제주 마을들은 바다에서 시작해 한라산을 향해 길게 뻗어 있다. 바닷가에서 삶이 움트고 중산간을 지나 산의 품으로 이어지는 선형 구조다. 오라리, 아라리, 노형리, 북촌리, 선흘리. 마을은 이름만 다를 뿐 그 형태는 비슷하다. 이는 단순히 지형이 아니라 바다와 인간, 그리고 산이 하나의 축으로 이어지는 생태적 질서가 반영된 결과다. 마을 단위로 구분된 지도를 오래 들여다보면 중심을 향해 수십 개의 가느다란 꽃잎이 겹겹이 모여드는 국화 한 송이가 떠오른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이유는, 붉게 물든 제주를 하얗게 감싸주기 위함이다.


제주 4·3을 기억한다.

제주를, 두 발로 온전히 걷는 일이다.


※본 글의 제목은 「풍경의 깊이」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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