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바라보는 자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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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글의 주인공이었던 열 살 아이에게 외롭고 힘든 시간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1회 팬지문학상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은 강진민 작가의 수상소감이다. 참혹했던 어린 그 시절, 밉고도 그리운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원망하고 자책했던 시간을 글로 극복하고, 과거로 돌아가 어린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대상작 <창백한 아이>는 개인적인 시련을 극복하며 피어난 희망의 순간들을 진솔하게 고백한 서사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장면마다 성실하고 뛰어난 문학적 묘사가 돋보였으며, 어두운 시절을 함께 지나온 가족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삶의 상처를 글로 승화한 진정성과 문학성이 높게 인정되어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팬지문학상은 “상실과 회복, 고통 속에서의 희망, 치유와 성장의 메시지”라는 주제로 2025년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 『디딤돌인문학』 참여 기관에 소속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클레멘트 코스는 1995년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가 뉴욕 주변의 노숙인을 모아 철학, 문학, 미술사, 역사 등을 가르쳤던 인문 강좌이며, 『디딤돌인문학』은 그 정신을 이어 국내의 노숙인과 재소자, 저소득 주민들에게 인문학을 통해 삶의 희망과 꿈을 품게 하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강좌다.
제1회 팬지문학상 수상작 전시회가 지난 10일부터 이번 달 24일일까지 북촌 갤러리단정에서 열리고 있다. 대상작 1편, 최우수상 4편, 우수상 15편 및 『디딤돌인문학』 참여자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소외된 이웃을 한 사람 한 사람 주인공으로 세우고 각별한 관계를 맺는 시간이다. 주인공 자리에 앉히면 빛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도 교도소 재소자였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 갇혔던 절도범을 빅토르 위고가 주인공 자리로 끌어올린 것이다. 들판의 이름 없는 꽃도 가까이서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아름답다.
고(故) 신영복 선생님은 팬지꽃을 화단의 맨 앞줄에 앉는 키 작고 별로 화려하지도 않지만, 한 줌도 채 못 되는 흙 속에서 여남은 개의 꽃을 피워내는 꽃이라고 말씀하셨다. 팬지꽃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으로, 팬지문학상에 응모한 분들의 글과 삶을 닮았다. 이번 팬지문학상 작품에는 특히 손 글씨가 많았다. 원고를 읽자면 팬지꽃이 올망졸망 피어있는 풍경이 연상된다. 제한된 환경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글과 손 글씨와 글쓴이의 삶이 닮았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팬지문학상 시상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특별한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받았다. 프로필을 보니 맺은 친구가 한 명이었다. 이런 요청은 대개 무시해왔다. 다행히 그 친구 한 명이 나에겐 각별한 분이었다. 그제야 신청자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제1회 팬지문학상 대상 수상자.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나는 두 번째 친구가 되었다.
어린 시절 학대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거리의 삶을 전전하던 그가 『디딤돌인문학』에 참여한 뒤 그 상처를 응시하기 시작했고, 자신과 세상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아름다운 글을 써냈다. 곧이어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고 친구 맺기를 신청한 것은 이제 세상 속으로 나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전시장에서 강진민 작가를 만났다. 나는 흐뭇했다.
자기 화해와 상처 치유의 절정을 보여주는 장면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려는 나를 붙드는 것은 대상작 육필 원고였다. 원망과 자책, 상처의 기억을 품고서 글자들은 저마다 떨리는 듯했다. 그 떨림을 꾹꾹 눌러쓴 흔적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페이스북 친구 신청 버튼을 누르는 순간은 또 어떠했을까. 육중한 철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 망설이는 그가 떠올랐다. 그 떨림과 망설임을 나는 ‘의지’라는 단어로 손쉽게 미화했다. 섣불리 화해와 치유를 말했던 무심함에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뭉클한 마음에 두 손을 붙잡고 그를 응원했지만, 실상은 그를 화해와 치유의 대상으로 두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를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육필 원고에 나를 비추는 일이었다. 그가 감당한 화해와 치유를 읽었다면, 나는 내 몫의 화해와 치유를 고백해야 했다. 화해와 치유의 자리에 나를 세우고 그 무게를 가늠한 이후에야 나는 비로소 그와 동일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정직한 관계 맺기는 동일한 입장에 서 보지 않고서는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중간중간 전시된 킨츠기 작품이 눈에 띈다. 킨츠기(Kintsugi, きんつぎ)는 금으로 깨진 도자기를 이어 붙이는 복원 기법이다. 이 방식은 깨진 흔적을 지우거나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를 드러내어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남긴다. 킨츠기에서 파손은 실패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자,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지점이다.
'나는 여기에, 내 마음은 비상하는 새', 무명 작가.
도자기가 그려진 종이를 찢고 구기면서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고, 다시 펴서 쓰다듬는 과정을 거쳐 도자기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 복원하고 싶은 자신의 상실을 떠올리며 금빛으로 흔적을 잇는다. 상처를 금실로 꿰맨 듯한 자국도 보인다.
깨진 자국은 대부분 금빛으로 복원되었지만, 한 지점은 찢긴 상태 그대로 남겨둔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라고 알려주었다. 킨츠기를 포함한 팬지문학상 작품은 치유의 과정이자, 자신의 현재를 직시하는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