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빛은 왼쪽에서 들어온다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는 일상의 경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조화롭다

by 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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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에서 빛은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사용된다.

베르메르의 빛은 왼쪽에서 들어온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머문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종이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고, 타인의 의도를 오해하면 곧바로 위험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인간은 표정과 시선, 말의 뉘앙스, 침묵과 망설임 같은 미세한 신호를 읽어내는 능력을 키워왔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 다시 말해 상대의 마음을 읽는 감각이다. 우리는 오래도록 이러한 감각을 깨우는 행위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 왔다.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 구조와 계급이 고도화되면서, 이 감각은 점차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예술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을 깨우는 장치라기보다, 권력이 원하는 질서와 의미를 가시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초상화는 있는 사람의 위엄을 드러냈고, 성서화와 역사화는 특정한 가치와 해석을 유일한 진실처럼 반복했다. 문맹이 많던 시대에 그림은 신앙과 질서를 설명하는 언어였고, 그 안에서 중요한 것은 감각이 아니라 메시지였다.


제도권 회화에서 감각은 자유롭게 열려 있는 영역이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조직된 수단이었다. 무엇을 느낄 것인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관람자는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위치에 놓였다. 예술은 질문을 던지기보다 설득했고, 깨우기보다 의미를 전달했다.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마음을 읽는 감각’은 확장되기보다, 특정한 의미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통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빛 역시 의미를 매개하는 수단이 되었다. 성화 속의 빛은 천상의 은총이자 신의 현존이었다. 빛은 감각을 깨우기보다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빛은 종교적 상징을 벗어나 삶의 언어로 바뀌기 시작한다. 빛은 공간을 구조화하고, 감정을 조율하며, 인간의 의식을 드러내는 회화의 근본적 요소가 된다. 그 변화의 중심에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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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는 여인, 1663


베르메르의 빛은 일관되게 왼쪽 창문에서 들어온다. 이 빛은 사물의 표면에서 급격히 끊기지 않고, 여러 단계의 미세한 중간 톤을 거치며 서서히 약해진다. 그 과정에서 인물과 사물은 선명한 윤곽선으로 분리되기보다, 빛의 흐름 속에서 서로 연속된 존재처럼 보인다. 빛은 특정한 사물을 강조하기보다 공간에 스며들고, 공간은 인물과 사물을 포괄한 하나의 상태를 이룬다.


이러한 빛의 질감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사회적 풍경과도 겹쳐 보인다. 빛이 일정하게 들어와 방 안을 채우듯, 당시 네덜란드는 ‘황금시대(Dutch Golden Age)’라 불릴 만큼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번영을 누렸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1인당 소득, 가장 활발한 해양 무역, 가장 높은 문해율, 가장 큰 출판 시장을 가진 국가였다. 귀족이 아닌 시민 계층이 문화·경제·정치의 중심에 서 있던,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한 사회 구조였다.


1602년 설립된 Dutch East India Company(VOC)는 세계 최초의 실제적 다국적 기업이자 주식회사였다. VOC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해양 무역망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향신료, 직물, 귀금속, 설탕, 도자기 등을 유럽 전역에 공급했다. 물자의 흐름은 자본의 흐름을 동반했고, 그 자본은 공화국 전역에서 시민 계층의 부로 축적되었다.


이 사회에서는 왕실이나 교회의 후원 대신, 시민 소비층이 예술 시장을 주도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에서는 장르화, 정물화, 풍경화, 실내 장면 등 ‘일상에 기반한 회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규모 성서화나 역사화를 통해 극적인 서사나 시각적 충격을 보여주기보다, 집 안의 고요한 순간과 익명의 인물들, 사적인 경험이 회화의 주제가 되기 시작했다. 베르메르가 거의 모든 작품을 실내에서, 절제된 일상 장면으로 구성한 것은 이 문화적 배경을 그대로 반영한다.


베르메르는 당대에 대중적 명성을 누린 화가는 아니었다. 동료 화가들 사이에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작품 수는 생애 약 36점에 불과했고 대형 역사화나 성서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다. 중산 시민층이 미술 시장의 주요 소비자였고 일상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 장르화의 전형은 여전히 도덕적 교훈이나 서사가 분명한 그림이었다. 베르메르처럼 빛과 정적, 머무는 상태에 집중한 회화는 주류에서 한 발 비켜나 있었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흐릿하고 뿌연 빛의 매질 속에서 인물과 공간이 하나의 상태로 엮인다. 그 빛은 공간과 사물의 관계를 미묘하게 융합시키는 힘을 가졌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렘브란트의 빛이 강렬한 명암 대비를 통해 존재의 신비와 내재적 힘을 부각했다면, 베르메르의 빛은 의도를 앞세우지 않는다. 이미 규정된 의미의 질서 안에 관람자의 감각을 가두지 않는다. 그 빛은 공간 속에 인물과 사물,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다양한 성격과 관계를 표현한다. 세상의 속도와 다르게 흐르며, 그림 속에서 마음을 깨우는 감각을 조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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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자화상,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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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을 든 여인, 1664


〈저울을 든 여인〉 속 여인은 저울을 들고 있지만, 그 저울은 명확히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 선과 악, 물질과 정신, 세속과 신앙의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어떤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저울은 판단의 표식이라기보다, 조화와 균형 그 자체에 가깝다. 의미가 강조된 삶과, 의도를 비운 삶이 균형을 이뤘다면 세상은 조금 더 견딜 만했을지도 모른다. 의미로 충만한 세계에서 베르메르는 말한다.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는 일상의 경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조화롭다고.


2025년이 저물어간다. 베르메르의 〈저울을 든 여인〉 앞에서 균형 잡힌 삶을 생각해 본다.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성남문화재단] 2025 겨울특별기획전_포스터.jpg

※ <베르메르의 비밀: 고요 속의 빛> 전시가 내년 3월 15일까지 성남큐브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현재 확인된 베르메르의 전작 36점을 국내 최초로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레플리카(replica, 교육 및 체험 등의 목적으로 원작을 특수 복제한 재현 작품) 전시다.

※ 본 글은 전시 보도자료와 도록, <렘브란트, 베르메르, 호퍼의 회화에 나타난 빛과 공간의 비교 분석에 관한 연구> (김종진)를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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