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의 팔씨름
둘째 빈이는 중2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팔씨름으로 도전을 해왔다. 빈이는 키와 몸무게로는 이미 아빠를 넘어선 지 꽤 되었다. 몸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는 친구들과 헬스를 했고, 개인 피트도 병행했다. 힘의 균형은 팽팽했고, 승부는 버티기에서 났다. 다시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아빤 농부의 자식이야.”
고1이 된 빈이가 다시 도전을 해왔다. 이건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숙명이다. 아들에게 아빠는 딛고 오를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넘어야 할 산이다. 나 역시 그랬다.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도전했다. 종목은 팔씨름과 오목 같은 바둑. 결과는 늘 아버지의 승리였다. 일부러라도 아버지는 져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도시로 유학을 나온 터라, 더 이상 아버지와 손을 맞잡지 못했다. 이제는 구순을 바라보는 아버지다. 근래에는 아버지와 팔씨름을 떠올린 적이 없다.
다시 맞붙은 대결, 이번에도 힘의 균형은 팽팽했다. 지난번보다 오래 걸렸지만, 역시 승부는 버티기에서 났다. 미세한 차이다. 하지만 결코 넘을 수 없는 차이라는 것을 서로는 안다. 승리의 변은 지난번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아빤 농부의 자식이야.”
삼 년 전쯤, 팔십 대 후반의 아버지와 빈이가 손을 맞잡았다. 남자들 특유의 승부 근성이 발동됐다. 빈이가 이겼고, 다음 판도 빈이가 이겼다. 궁금하지도 않았던 나와 아버지의 팔씨름 결과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렇게 빈이도 나를 이길 것이다. 그러니 이후로는 빈이와 팔씨름을 하지 않으련다. 빈이가 자식을 낳고,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참고로, 삼 년 전 그 승부에서, 옆에서 지켜보던 팔순의 어머니가 팔을 걷어붙이고 빈이의 손을 잡았다. 결과는 엄마의 승리였다. 그것도 가볍게. 그 순간, 거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그림. 레슬러들, 귀스타브 쿠르베,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