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앞에서 눈을 감다

엄정순 《보푸라기 - 촉각적 사건》, 삼청동 학고재

by 윌마

http://www.newswel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734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의 존재는 쉽게 느끼지 못하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이 떠나면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과잉은 좀처럼 인식되지 않지만 결핍은 곧바로 인식된다.

이는 인간의 감각과 인식이 외부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 기관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오히려 걸러내고 차단한다. 시각·청각·촉각이 외부 자극을 무한정 받아들인다면 인식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결국 인식이란 외부 세계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대상을 선별하고 재조직하는 주체적 실천이다.


현실에서 과잉의 한 예로 유튜브나 숏폼으로 대표되는 영상 미디어를 들 수 있다. 시각에 의존하는 영상 미디어의 전달력은 가히 압도적이다. 그러나 전달이 압도적일수록 역설적으로 인식의 여지는 줄어든다. 자극이 지나치게 풍부해지면 감각은 그것을 더 이상 특별한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 가운데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흔히 80% 이상으로 이야기된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신인류는 그보다 더 불균형적으로 시각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과잉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지만, 그것을 깊이 있는 인식으로 이어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식하지 못하는 삶, 깨어있지 못하는 삶은 인식 주체인 ‘나’를 삶에서 소외시킨다. 인식은 감각의 과잉이 아니라, 자극을 선별하고 재조직하려는 주체적 태도에서 생긴다. 그 출발은 시각에 치우친 감각의 불균형을 자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정형화된 시각 행위인 ‘본다’와 달리, 손끝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감각의 진동은 인식의 지평을 신체 전반으로 확장시킨다. 만지는 행위는 나의 감각을 어디로 이끌어갈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연이고, 내가 느낀 감정이 나에게 절실한 그 무엇이었음을 알게 한다는 점에서 필연이다. 촉각으로 감각할 수 있는 작품은 관람객의 참여가 작품을 완성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무늬 없는 리듬 1-3.jpg 무늬 없는 리듬 1-3, 2025, 종이에 아크릴릭, 울, 학고재 제공


삼청동 학고재에서 오는 3월 28일까지 열리는 엄정순의 『보푸라기 - 촉각적 사건』전은 ‘보푸라기’라는 신체적 접촉에 의해 생긴 결과물, 즉 촉각적 사건을 주제로 한다. 보푸라기는 반복된 마찰 속에서 우연히 형성되는 미세한 잔여물이다. 동시에 코끼리를 만진 무수한 손들은 우연한 접촉을 만남이라는 필연적 관계로 이어진다. 엄정순은 2023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참여형 설치 작업 〈코없는 코끼리〉 이후로 시각에 의존해 온 기존의 감상 방식을 넘어 감각의 다양성과 인식의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1967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 따르면, 서로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달하게 했는데, 평균적으로 약 여섯 단계를 거치면 목표 인물에게 편지가 도달했다. 현대 SNS 기반에서는 네 사람만 거치면 우리는 서로가 다 연결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단순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여러 겹의 관계망을 통해 서로 겹치고 얽혀 있다. 무한히 이어지는 만남에 흔적이 없을 리 없다. 그러니 엄정순의 저 보푸라기들은 인류 전체의 체온과 감정과 시간의 흔적들이다.


전시 전경.jpg 전시 전경, 학고재 제공

전시장을 관통하는 상징은 ‘코 없는 코끼리’다. 이는 맹인모상(盲人摸象) 우화에서 빌려온 형상이다. 코끼리의 한 부분만 만지고 전체를 오해하는 이야기처럼, 인간은 부분적인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우리의 감각은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외부 자극을 선별하고 개인의 경험과 해석을 거쳐 재구성된 세계를 받아들일 뿐이다. 특히 시각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 인식의 불완전성은 더욱 커진다. ‘코 없는 코끼리’는 바로 그 인간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메타포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인간은 이 질문에 단 한 번도 완전한 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굳이 이런 거대한 질문이 아니어도 그렇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아내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마음조차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다. ‘코 없는 코끼리’는 눈뜬 자의 눈먼 시선을 비추는 형상이다.


코끼리의 어느 모서리.jpg 코끼리의 어느 모서리 연작, 2023-2025, 울 태피스트리, 메시, 가변 설치. 학고재 제공

엄정순 작가의 불완전한 인식에 대한 성찰은 단순한 비판에서 멈추지 않는다. 불완전한 인간은 누구나 파편을 더듬으며 전체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작가는 <코 없는 코끼리> 조형을 해체해 각각 독립된 오브제로 제시한다. 이는 완전성과 전체성에 대한 질문이자, 동시에 부분적인 인식 또한 정직한 경험이라는 선언이다. 인류가 쌓은 문명은 완전한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핍 위에서 이루어졌다. 만약 완전한 인식에 도달했다면 인류의 도전은 오래전에 멈췄을 것이다.


섬에서 자란 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고, 산골에서 자란 사람에게 해는 산에서 떠서 산으로 진다. 파편에 불과한 경험이 일면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지닐지라도, 그 경험은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 된다. 성찰을 통한 자기 부정이 한쪽 날개라면 몸으로 겪은 경험이 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다른 한쪽 날개다.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룰 때, 코끼리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학고재 갤러리를 찾아 코끼리 조각을 직접 만져보기를 권한다. 2023년 광주비엔날레에는 전 세계에서 오십만 명이 다녀갔다. 어쩌면 전 세계 사람들과 금세 이어지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자. 그 느낌은 찾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촉각을 벼리고 벼린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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