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물고기, 파울 클레
어제의 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황금물고기, 1925, 출처 : commons.wikimedia.org파울 클레의 <황금물고기>입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장면 같지요? 현관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바닷속 심해에 와 있는 기분이 드실 거예요.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자주 따라 그리는 그림 중에 하나예요. 작가가 해석을 남기지 않아서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 해석이 분분한 그림이에요. 파울 클레는 바우하우스라고 독일 예술 종합학교 교수였어요. 당시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문명에 대한 거부로 전통적인 구상보다 추상이 선호되던 시기였어요. 저항과 허무가 섞여 있었죠. 파울 클레는 전통과 과거를 부정하는데 매몰되지 않았어요.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했지만 질서와 체제 속의 음악처럼 조화로운 그림을 추구했지요. 파울 클레는 7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수준 높은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파울 클레 그림에서 느껴지는 선의 리듬과 색채의 멜로디는 음악이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런데 독일 나치들은 파울 클레의 작품들이 현실적이지 않고 퇴폐적이라며 교단에서 내쫓고 많은 작품을 불태워 버렸어요. 그래서 황금물고기를 나치주의에 대한 저항이라고도 해요. 보기엔 번쩍번쩍 하지만 눈은 퀭하잖아요. 그림의 배경도 중요하지만 그림 앞에 서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얘기해 보고 싶어요.
먼저 가운데 황금 물고기만 포착한 그림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주위에 해초랑 작은 물고기들이 빠진 그림이죠. 어떤 느낌이 들까요? 아! 황금물고기구나! 멋지다! 예쁘다! 이런 그림 하나 갖고 싶다. 이런 느낌일까요? 이 그림은 감상하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그림 앞에서 얼마나 오래 있으실 것 같으세요? 감상하는 그림은 관객들의 발을 오래 붙잡지 못합니다.
그럼 다시 처음 그림으로 가 볼게요. 뭐가 달라졌나요? 파란색 선이랑 수초가 눈에 띄실 거예요. 무엇보다도 물고기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조금 이상하죠. 황금물고기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요. 눈을 마주치지 않죠. 사이가 안 좋아 보이죠. 황금물고기 옆에 물고기 친구들을 그린 것만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져요. 서사라고 하죠.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예요. 인간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죠. 여럿이 모여서 살아요. 사회적 동물이에요. 이야기를 나누고 협력하고 싸우고 그러면서 인간관계가 시작돼요. 감상하는 그림에서 생각하는 그림으로 바뀌는 순간이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아시죠? 꼭 졸고 있는 것 같잖아요. 오래 앉아 있었다는 느낌이 들고요. 서사가 있는 그림은 관객들을 오래 생각하도록 머물게 하는 그림입니다.
황금물고기는 원래 잘난 체하는 물고기였을 거예요. 황금빛에 몸도 제일 크잖아요. 황금물고기가 자리 잡은 중심은 사방으로 접촉면을 가진 자리예요. 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죠.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고 영향을 많이 미치게 하는 자리고요. 하지만 경쟁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관심이 쏟아지는 매우 힘든 자리예요. 친구가 있으면 힘이 될 텐데 친구들을 자기를 회피하죠. 가장자리에 있는 친구들은 잘난 체하는 황금물고기가 못마땅했던 거죠. 가장자리는 다른 말로 변방이잖아요. 변화는 절대 중심에서 일어나지 않아요. 변방에서 시작됩니다. 변방의 변화를 중심부에서 감당하지 못하면 중심부는 혼란을 겪었어요. 중국은 그 반대의 경우죠. 한반도를 포함해서 변방의 역동성을 끊임없이 중국 내부로 흡수했어요. 중국이 지금처럼 강해진 이유죠. 황금물고기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느낀 바가 많았을 거예요. 그리고 반성했겠죠. 여러분이 보시는 물고기는 반성을 통해 거듭난 물고기예요. 과거와 다른 물고기죠.
저는 이 그림을 보면 관계의 떨림이 느껴져요. 혼자 있는 황금물고기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느낄 수 없었어요. 검푸른 바다가 아니라 에탄올 병 속에 박제화 되어 전시된 물고기랄까. 자연사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잖아요? 핀셋으로 벽에 꽂아 둔 고추잠자리 원본 같은 거요. 아무리 황금빛으로 빛나도 혼자면 어떤 관계도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이야기가 많지 않아요. 이런 얘기 들어보셨죠. 꽃이 그려져 있어요. 그런데 나비나 벌이 없어요. 그 꽃은 꽃이 아닌 거죠. 나비와 벌이 곁에 있어서 꽃은 향기를 갖고 그림에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예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재미있으면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을까요?
사람이나 그림이나 똑같아요. 어떤 사람이나 장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알려면 맥락과 상황이 이루어지는 관계를 중심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엄마, 아빠, 동생, 친구가 아프니까 나도 아픈 거예요. 주위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죠. 그 정도 공감능력이 있으신 분들은 어떤 그림에도 공감하실 수 있어요. 공감이 안 간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그저 여러분과 안 맞을 뿐이에요. 그런 그림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여러분만의 그림이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