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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Mar 05. 2016

짜릿했던 스페인에서의 첫날밤, 프리메라리가 직관

스페린-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 그 두 번째 이야기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바로 'Salida', 출구 표지판이다. 표지판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레알 마드리드 공식 스토어가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스페인에 도착했다는 것이 실감 났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들어가서 유니폼을 하나 파고 싶었으나, 일행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비행을 함께한 일행은 다름 아닌 '학교 친구들'. 마드리드에 있는 IE 비즈니스 스쿨의 글로벌 교류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는 아이들이다. 1주일 간의 프로그램을 마친 후, 나는 약 3주 정도 더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를 여행할 계획이다.


공항에서 짐을 찾은 후,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각자 알아서 구한 숙소였지만, 어차피 학교 근처에 있는 곳이라 학교 앞에서 내리면 된다.(요금은 30유로)


시내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 비록 알아들을 수는 없는 내용이었지만, 경쾌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택시 기사분의 질문. 스페인어라 내용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억양이 상당히 경쾌하다. 질문이 끝나고 나면 다들 멀뚱멀뚱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택시 기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찰나의 침묵 뒤에 다시금 이어지는 질문들. 아! 여기가 스페인이구나.


공항에서 약 20여분을 달려 시내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또 한 번의 멘붕이 찾아왔다. 생전 처음 보는 마드리드 거리에서 달랑 주소 하나를 들고 집을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히 공항에서 숙소를 미리 검색해 둔 덕에 구글 맵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참고> 구글 맵에서 주소로 위치를 검색하려면 반드시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어야 한다. 다만, 일단 위치를 검색해 길 찾기 기능을 실행시켜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인터넷이 끊겨도 GPS 기능을 활용해서 목적지까지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골목골목을 돌아 드디어 숙소를 찾았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구하는 경우, 막상 숙소 앞에 도착해서 헤매는 경우가 많다. 호스텔과는 달리 간판(?)이 없어 건물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건물 입구에 적혀 있는 번지수를 유심히 살펴보도록 하자.

마드리드에 건물을 3개나 가지고 있는 부자 아저씨, 스페인 특유의 붙임성과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기도 하다.

숙소에 무사히 도착해 짐을 풀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한 후, 한숨 푹 자고 싶었으나, 저녁에 중요한 스케줄이 있어 대충 옷을 갈아입은 후, 길을 나섰다. 다름 아닌 프리메라리그 직관을 위해서였다.


다시 한번 구글 맵의 도움을 받아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위치를 확인했다. 집에서 도보로 30분 거리다. 경기 시각은 저녁 9시, 현재 시각은 낮 4시다. 한 두어 시간 정도 관광을 먼저 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숙소를 기준으로 주요 관광지와 경기장이 서로 반대 방향에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있어봤자 딱히 할 것도 없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구글 맵을 따라 30여분을 걸으니 골목 사이로 뭔가가 보인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레알 마드리드의 홈 경기장이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려면 한참 남았지만, 이미 경기장 주변에는 응원도구를 파는 노점과 갖가지 인형의 탈을 쓴 늑대들이 어슬렁대고 있었다.


경기장 주변을 서성이는데 심슨, 미키마우스 등의 탈을 쓴 사람들이 갑자기 친한 척을 하며 들이댄다. 그러더니 대뜸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하는데, 사진을 찍은 후에는 팁을 요구한다. 유럽에서는 길에서 인물 사진을 찍으면 무조건 팁을 내야 한다고 보면 된다. 대충 1~2유로 정도면 서로 기분 좋게 추억을 남길 수 있으니, 한 번쯤 사진을 찍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사진도 찍고, 주변 구경을 했지만, 아직 경기가 시작되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았다. 도대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고민 끝에 밥이나 먹자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어딜 가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을지 막막해졌고, 결국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경기장 맞은편에 있는 버거킹으로 향했다.


스페인에서의 첫 식사는 그렇게 와퍼로 결정되었다.


맥도널드, KFC,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매장의 장점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예측 가능한' 음식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의 와퍼는 한국 그리고 일본의 와퍼와는 사뭇 달랐다.

일단 콜라의 사이즈가 무려 700ml였다. 뭐 빈 컵을 받은 후, 직접 음료대에 가서 원하는 만큼 양을 채울 수 있고, 리필도 가능한 시스템이라 컵 사이즈가 뭐 그리 대수겠냐만은... 그래도 그 웅장한 크기는 갓 스페인에 도착한 동양 남자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음료뿐 아니라, 버거 사이즈도 한국에 비해 큰 느낌이었다. 둘레를 재보지 않아서 얼마나 큰지 비교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버거를 다 먹고 나니 배가 불러서 감자는 거의 손도 못 댔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밤에 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경기장의 웅장한 규모가 밝게 빛나는 조명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녁 7시, 경기 시작까지는 아직도 2시간이나 남았다. 하지만 경기장 주변은 점점 인파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왁자지껄 떠들며, 노래를 부르고 호루라기를 불어 대는 모습에 어렴풋이 2002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스페인 애들은 월드컵 분위기를 매주 느끼는구나...' 별 거 아닌데,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근처 구멍가게에서 물을 한 통 사들고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이미 한국에서 티켓을 예매해서 출력해 왔는데, 그냥 그걸 가지고 올라가면 된다. 티켓 실물을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이서 매표소에 티켓을 바꿔달라고 이야기해 봤는데, 한번 출력한 티켓은 실물로 교환이 안된다고 한다. 조금은 아쉽기도 했지만, '그깟 티켓이 뭔 대수냐...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되지'라 생각하며 타워 C로 발걸음을 돌렸다. 참고로, 구매한 좌석에 따라 입장하는 장소와 시간이 각각 다르니, 사전에 매표창구나 경기장 관계자에게 티켓을 보여주고 문의하도록 하자.

* 프리메라리가 티켓 인터넷 예매 후기 : http://jerrystory.tistory.com/98

드디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입성에 성공했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그라운드를 처음 보았을 때 벅차오르던 그 순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비록, 비루한 학생인지라 맨 꼭대기 싸구려 좌석에 앉았지만, 그래도 가장 높은 곳에서 경기장 전체를 굽어 살필 수 있다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사실, 인터넷으로 자리를 예매할 때는 뒷 구역 중에서 가장 앞인 줄 알고 골랐는데, 막상 와보니, 내 자리가 맨 뒷좌석이었다.(그때 느꼈던 상실감이란...ㅠ) 그 큰 경기장 맨 꼭대기에서 경기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눈 앞이 캄캄했었는데, 다행히도 경기가 시작되고 난 후에도 드문드문 빈자리가 있어서 조금씩 아랫줄로 내려올 수 있었다.

나름 아시아의 축구 호랑이, 한국에서 날아온 몸이었지만, 라리가 선수들의 몸 푸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가볍게 툭툭 차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동료 선수들에게 전달되는 롱패스를 보고 있노라니 뭔가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귀로는 관중들의 함성과 야유를, 눈으로는 선수들의 패스와 슈팅 연습을 보면서 나도 점점 경기에 빠져들 준비가 되고 있었다.

드디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전열(?)을 정비하고 경기를 시작하는 양팀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마치 FIFA 2015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오늘은 호날두가 몇 골이나 넣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경기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경기장이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늦은 저녁 시간, 밖에서 축구보다 감기 걸리지 말라고, 주최 측에서 천장에 달린 히터를 틀어준 것이었다. 스페인의 사소한 축구 인프라에 감동하는 순간이었다. 이 정도 시설이면 돔구장도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그렇게 또다시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이번엔 뭔가 야릇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여행을 하면서 느끼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곳 사람들은 흡연에 매우 관대한 편이다. 물론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담배 피우는 것을 참으며 받는 스트레스가 담배보다 몸에 더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 서로서로 관대하게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도 몇 년 전부터 실내 흡연을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되면서,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축구장은 흡연 금지 구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흡연이 금지되는 실내는 '밀폐된 공간'으로 정의되는데, 축구장은 천장이 뻥 뚫려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돔구장 도입이 시급한 순간이다.

전반 내내 지루한 공방이 이루어지면서, 양팀 모두 별 소득 없이 45분이 지나갔다. 레알 마드리드가 계속해서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는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특히, 호날두는 경기에 나오긴 했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후반 들어, 레알 마드리드는 더욱 세차게 비야레알의 골문을 두드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실을 맺었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호날두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반칙을 얻어냈고, 스스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무사히 골로 연결시키며, 경기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골이 터지면, 스타디움이 떠나갈 정도로 사람들이 환호할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천지가 진동하진 않았다. 그냥 야구장에서 홈런 하나 터졌을 때 정도의 느낌이랄까? 알고 보니,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스페인 내에서는 꽤 점잖은 편이라 한다. 뭐랄까, 꽤 돈 많고 염치를 차리는 귀족 같은 느낌이다. 반면, 같은 마드리드라고 AT 마드리드의 팬들은 상당히 열정적인 응원으로 유명하다는... AT 마드리드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 때문에 항상 레알 마드리드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건가 보다.

점잖은 분들이지만, 그래도 골이 터지니 다들 일어서서 박수 정도는 쳐주더라 ㅋ

그렇게 1:0으로 경기가 끝나나 싶었는데, 왠 걸... 단 한 번의 역습으로 모레노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레알 마드리드라는 강팀을 맞아 내내 잠그는 수비를 하다 한 번의 역습으로 찬스를 만들어내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비야레알의 전술을 보면서... 다시금 '이게 프리메라리가의 클래스구나...' 하며 감탄했다.(스페인 뽕에 제대로 취한 하루였다. ㅋ)


그렇게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레알 마드리드는 경기를 가져오기 위해 그야말로 총공세를 펼쳤으나, 비야레알의 골키퍼 아센호는 그야말로 야신이 빙의한 듯 '신 들린 선방'을 보여주며 골문을 철저하게 잠가버렸다.


90분의 전후반 경기가 끝나고, 나의 생애 첫 프리메라리그 관람도 막을 내렸다. 잡을 줄 알았던, 그리고 잡을 수 있었던 경기를 놓쳐서 조금은 허무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경기였고 스페인에서의 첫 일정으로서도 손색없는 경험이었다.

1:1 무승부라는 아쉬운 결과에 혹시라도 경기장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었지만, 역시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점잖은 양반들이었다. 다들 조용히, 그리고 빠릿빠릿하게 경기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구글맵에 의지해서 왔던 길을 차근차근 되돌아 갔고, 그렇게 스페인에서의 첫 번째 하루가 지나갔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http://jerrystory.tistory.com/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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