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첫 번째 이야기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 Andrew matthews
누군가 내게 물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언제냐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집을 나선 후부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이 가장 설렌다.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앞으로 25일 동안 내게 어떤 일이 펼쳐질까? 걱정과 기대를 절반씩 배낭 위에 얹은 후, 공항으로 향했다.
나리타 공항은 도쿄 시내에서 차로 약 7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시내에서 나리타 공항까지 가는 여러 가지 방법 중, 나는 공항버스를 선호한다. 1,000엔만 내면 도쿄역에서 공항까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고, 도쿄역 맞은편 버스회사 사무실에 짐도 (무료로) 보관할 수 있다. 밤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이번 여행에서는 아침 일찍 버스회사 사무실에 짐을 던져둘 수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였다. 새벽같이 집을 나와서 배낭을 사무실에 맡긴 후, 도쿄역과 황궁 근처 공원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늘 그래 왔듯 비행기가 출발하기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여유 있게 발권을 하고 끼니를 때우기 위해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비행기 출발 시간이 20분 정도 당겨져 있었다. 미리 연락을 받기는커녕 발권하는 동안에도 아무도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이륙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쫓기는 기분에 사랑스러운 빅맥을 포기하고 출국 심사대 앞으로 향했다. 식사는 물론, 면세점도 제쳐두고 곧장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앞에서 30여분을 기다리기는 했지만, 시간에 쫓겨 허둥대는 것보다는 이게 맘이 편하다.
그렇게 어영부영 마드리드, 정확히는 경유지인 도하로 향하는 비행기 좌석에 앉게 되었다. 카타르 항공은 생전 처음 타보는 데,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괜찮았다. 일단 이코노미석치고는 좌석이 넓은 편이고, 손잡이 한편에는 USB 포트가 있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충전할 수도 있다.
워낙 비행기에서 주는 땅콩을 좋아하는 편이라, 자리에 앉자마자 승무원에게 땅콩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비행기가 뜨고 나면 승무원도 한동안 움직일 수 없으니, 자리에 앉자마자 부탁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아쉽게도 카타르 항공은 땅콩을 따로 준비해두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비행기를 돌리라고 하고 싶었으나... 이코노미석 구석에 쭈그려 앉은 내게 그런 힘이 있을 리가 없다. 그냥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기내식이 나오는 시간만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마침내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기내식을 먹고, 영화도 한 편 보고, 맥주까지 한 잔 들어가니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자다 깨다를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어느덧 도쿄를 떠난지도 12시간가량 지나있었다. 창문 아래로 경유지인 도하의 야경을 보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흔히, 오일파워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번에 도하를 잠깐 경유하면서 '오일파워'가 뭔지 체감할 수 있었다. 개장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공항에 있는 시설 하나하나가 삐까번쩍하다. 애들 노는 놀이터도 뭔가 동화 속에 있는 것 같고, 공항 곳곳에 눈이 돌아갈 정도의 고급차들이 즐비하다.
도하 공항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것은 바로 '와이파이'. 신호가 약했던 것인지 인터넷 연결 속도가 무척이나 답답하다. 심지어 카카오톡을 이용해서 한국으로 보이스톡을 시도했는데,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중에 모로코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는데, 아마 카카오 측에서 이슬람 국가와의 통화를 차단한 것 아닌가 싶다.
시간이 좀 넉넉했다면, 공항 구석구석을 구경했을 텐데, 아쉽게도 환승시간이 짧아 바로 게이트로 이동해야만 했다. 얼핏 보니 푸드코트도 잘 차려져 있던데, 이날만큼은 공항에서 밥을 편히 먹을 팔자가 아니었나 보다.
한밤중에 도쿄를 출발해 떠오르는 태양을 피해 서쪽으로 줄기차게 도망쳐왔지만, 도하에서 환승하는 사이에 어느덧 아침을 맞게 되었다. 덕분에 마드리드로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맞닿아 있는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바다인가 싶을 정도로 푸르고 탁 트인 하늘이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기내식을 먹고, 약 6시간 동안 사막과 지중해를 지나 마침내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에 한편으로 설레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두렵기도 했다. 과연, 스페인은 앞으로 내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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