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세 번째 이야기
흔히, 유럽 3대 미술관이라고 하면 런던의 국립미술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꼽는다. 마드리드에 와서 프라도 미술관을 보지 않고 돌아간다면 뭐랄까 삼겹살 집에 가서 마늘만 구워 먹다 온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실, 프라도 미술관이 유럽의 3대 뭐시기라길래,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 런던의 대영 박물관과 함께 3대 전시관인가 보다 했을 정도로 예술에 무지한 나 역시도 프라도 미술관만큼은 꼭 봐야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술에 워낙 까막눈인지라 '14유로나 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봤자 제대로 보고 나올 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럽 여행 중에서도 미술, 건축 등 예술 분야는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는 가이드 투어를 적극 활용하는 편인데, 마드리드에서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할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조금 망설였던 것이다.
이런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인지, 프라도 미술관은 매일 폐관 2시간 전 미술관을 무료로 개방한다. 무료 개방이 시작되는 오후 6시(주중 기준)가 되기 약 15분 전쯤부터 미술관 입구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곤 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공짜를 좋아하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여기서 프라도 미술관 입장 정보를 간단히 살펴보자.
* 입장료 : 14유로(성인)
* 운영 시간 : (평일) 10시 ~ 20시 / (주말) 10시 ~ 19시 <폐관 2시간 전부터 무료입장>
* 휴관일 : 1/1, 5/1, 12/25
무료입장이 시작되는 오후 6시까지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프라도 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레티로 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레티로 공원은 한때 펠리페 2세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 매일같이 지나다니던 여의도 공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규모만이 아니다. 한국과 유럽의 공원은 분위기와 공기마저 천지차이다.
스페인이 한국을 압도하는 것은 공원뿐만이 아니다. 마드리드의 3월 날씨는 '예술'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어렸을 적, '사계절이 뚜렷한...' 어쩌고 하면서 우리나라의 기후가 좋다고 배웠는데... 교과서 저자가 누군지 몰라도 국뽕에 제대로 취해서 쓴 것임이 틀림없다. 사계절, 그깟 거 없어도 되니까 스페인처럼 좋은 날씨 좀 가져보자 우리도!!
공원 중앙에 위치한 호수에서는 현지인들이 보트를 타고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저때가 무려 평일 오후의 모습이다. 물론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지만, 정말이지... 스페인 사람들은 일 안 하고 놀기만 하나보다. 그러니까 경제 위기가 오는거다. 뭐 그냥... 부러워서 하는 말임
한 발짝 물러나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면, 여기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시내인지, 어디 해변의 휴양도시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넘쳐흐른다. 스페인 사람들의 삶을 즐기는 여유 하나만큼은 레알 진퉁이다.
그렇게 햇살을 맞으며, 광합성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면서 공원 여기저기를 배회하다가... 프라도 미술관 쪽 출구로 슬슬 걸어나오니 저 멀리 동화 속에 있을 것 같은 건물이 눈에 보인다. 저 건물이 바로... 나도 모름 ㅡ.ㅡ;;; 뭔가 예쁘장하게 생긴 모습이 유명한 건물인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다. ㅋ
여기도 나무를 정성껏 잘 다듬어 놓았더라... 왠지 모르게 초코송이 과자가 생각났다. 레티로 공원은 프라도 미술관 쪽 출입구가 아마 정문(?)인가 보다. 사실 많은 관광객들이 오전 일찍 프라도 미술관에 입장해서 미술품을 관람한 후, 레티로 공원으로 이동하는 동선을 선호한다고 한다.
저 때가 3월 초였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꽃과 나무, 잔디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레티로 공원에는 약 1만 5천여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마드리드 시내에 산소를 공급해준다고 해서 '마드리드의 허파'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왠지 아마존이 생각났었더라는...
레티로 공원 산책을 마친 후, 프라도 미술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특이하게 생긴 성당이 하나 있길래, 검색을 해보니 '산 제로니모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하나 찍으려고 했는데, 옆을 보니 이미 동상 하나가 포즈를 잡고 있길래 이 사진으로 기념사진을 대신했다. 아무래도 나보다 비주얼이 훨씬 나은 것 같아서... ㅋ
프라도 미술관은 레티로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프라도 미술관 앞에는 19세기 스페인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인 고야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미술관 주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2015년 3월 초, 프라도 미술관의 모습이다. 아마 '고야 특별전' 같은 것을 하고 있었나 보다. 스페인 왕실이 15세기부터 꾸준히 수집해 온 8천여 개의 회화작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장소가 모자라서 1,300여 개만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규모는 과거 그 나라가 얼마나 강성 했었나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한 때 유럽을... 아니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 프랑스, 스페인이 유럽의 3대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조금은 무뎌지고, 그림자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6시가 가까워오자 거짓말같이 미술관 주변으로 긴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햇살을 즐기며, 주변을 산책 중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사실은 무료관람이 시작되는 6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줄이 더 길어지기 전에 재빨리 움직여서 자리를 잡았다.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줄이 길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만큼 길지 않았다. 1층에서 무료 관람 티켓을 받은 후, 2층으로 올라가 엑스레이 검색대를 지나면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2층 입구에 물품 보관함이 있는데,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가방을 비롯한 소지품은 보관함에 넣고 가벼운 몸으로 입장하도록 하자. 보관함 이용 시, 1유로를 넣어야 하긴 하지만, 나중에 소지품을 찾을 때 돌려받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미술에 워낙 문외한이라 내심 걱정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입구에서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수 있었다. 비록, 모든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작품들을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감상하니 한결 이해가 쉬웠다.
* 오디오 가이드 대여료는 3.5유로
특히, 틴토레토의 '세족식'이라는 작품은 오디오 가이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을 그림이었다. 바로 아래 보이는 작품인데, 그림을 처음 봤을 때는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세족식은 최후의 만찬을 앞두고 예수님이 12 제자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인물과 물건의 비율이나 여백의 배치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뭐랄까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같은 어색함도 느껴진다. 그러나 작품의 오른쪽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면, '세족식'의 진가가 바로 드러난다. 작품 안의 여백과 원근감, 그리고 비율이 거짓말처럼 살아나기 때문이다. 원래 이 작품은 성당의 오른쪽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고 한다. 성당에 예배를 드리러 온 신자들이 그림을 바라보는 각도에 맞춰서 인물과 사물을 배치해서 묘사했기 때문이다. 작품 우측에서 그림을 보면 저 멀리 건물 바깥의 운하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기가 막힌 그림이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세족식 외에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루벤스의 '삼미신' 그리고 고야의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바아' 등 유명한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사실, 2시간 동안 관람하기에는 작품의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미술에 관심이 많다면, 오전 일찍 입장해서 여유롭게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마드리드에 머무는 동안 매일같이 오후 무료입장 찬스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오디오 가이드를 매일 빌리는 비용도 만만치는 않을 듯 ㅋ)
사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속으로 이제 미술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한 달의 시간이 지나니 그때의 다짐이 공염불이 돼버린 것 같다. 이번 포스팅을 계기로 그때의 감동을 떠올리며, 미술에 취미를 한 번 붙여봐야겠다. ㅋ
블로그를 방문하시면,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