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네 번째 이야기
동화 속에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마을, 세고비아는 마드리드에서 당일치기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여행 준비를 꼼꼼히 하지 않으면 자칫 세고비아 같은 근교 도시를 놓치기도 한다. 나중에 우연히 마드리드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는 '마드리드는 시내보다 세고비아나 톨레도 같은 근교 도시가 훨씬 낫다'는 말을 듣고서는 땅을 치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나는 다행히도 MBA 교환 프로그램 중에 세고비아 관광(선택)이 있어서 전문 가이드와 함께 세고비아를 알차게 둘러볼 수 있었다.
3월 첫째 주 금요일 오전, IE 비즈니스 스쿨의 공식일정이 모두 끝났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현지 가이드와 함께 세고비아로 떠났다. 가이드는 IE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해서 관광회사를 차린 젊은 창업가다. 한국식으로 따지자면, '학교 선배'지만, 여기서는 그냥 친구다.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까지는 기차로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는 거라 최대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렌페를 이용했는데, 버스를 타면 교통비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 '마드리드 - 세고비아' 이동 시간 및 비용 <왕복 기준>
: 기차(1시간 / 20.6유로), 버스(2시간, 14.8유로)
기차에서 내리면 눈으로 뒤덮인 산이 저 멀리 보인다. 세고비아는 마드리드 북쪽에 위치한데다, 고도도 높은 편이라 날씨가 조금 쌀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낮에는 기온 차이가 크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마을까지는 택시로 이동했다. 세고비아 마을 입구에 위치한 이 웅장한 다리는 약 16km 떨어진 프리오 강의 물을 마을로 끌어오기 위해 로마시대에 건축된 수도교다. 세고비아의 수도교는 '악마의 다리'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총 120개의 기둥과 170여 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규모를 보면 도무지 사람이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날마다, 가파른 협곡을 오르내리며 물을 길어와야 했던 한 소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악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날이 밝기 전에 다리를 놓아 집 앞까지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해줄 테니, 영혼을 팔라는 것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악마의 제안을 승낙했지만, 막상 겁이 난 소녀는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올렸고, 악마가 마지막 돌을 채우며 다리를 완성하기 직전, 기적적으로 해가 떠올랐다. 그렇게 악마는 다리를 완성하지 못했고, 소녀는 행복하게 살았다.
다리의 중앙 높은 곳, 인형이 놓여 있는 자리가 바로 악마가 마지막 돌을 채우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한다.
세고비아의 수도교는 2만 4,000여 개의 돌을 시멘트 등의 접착제(?) 없이 단순히 쌓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아치 부분의 돌들이 무너지지 않고 다리의 무게를 버텨내는 것을 보면, 로마 세대의 토목기술은 정말 대단하다. 악마의 다리는 11세기에 이슬람 세력에 의해 한 차례 파괴되었고, 15세기 들어 원형 그대로 복원되었다. 그러다 1895년에 들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도교 옆 쪽으로 나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아소게호 광장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1997년부터 아소게호 광장의 차량통행이 스페인 정부에 의해 완전히 금지되었다. 차량이 오가면서 생기는 미세한 진동 때문에 혹시라도 수도교가 훼손될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이후 세고비아를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 곳에서 내려 여행을 시작한다. 광장 주변에는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버스와 택시들이 늘 줄지어 서 있다. 마치 터미널처럼,
세고비아의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 스파이크 모양의 벽면이 인상적인 이 건물은 까사 델 로스 피코스(Casa del los Picos)라는 저택인데, 15세기에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이슬람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 적에게 위압감을 심어주기 위해 뾰족한 돌로 벽면을 장식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뭐... 믿거나 말거나...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산 마르틴(San Martin) 광장이 나온다. 그리 크지 않은 광장 중앙에는 후안 브라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6세기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카를로스 5세가 에스파냐의 왕이 되면서, 과도한 세금과 차별대우에 이 곳 주민들의 삶이 어려워졌다. 당시 왕에 맞서 싸웠던 사람이 바로 '후안 브라보'다. 실제로 후안 브라보는 정부군과의 전투에서도 여러 차례 승리를 거뒀다고 전해진다. 후안 브라보의 위용에 위축된 카를로스 5세가 주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후안 브라보가 요구한 것들을 대거 수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카를로스 5세에 의해 목숨을 잃은 비극적 영웅이 바로 후안 브라보다. 한편, 동상 왼쪽으로 보이는 성당은 원래 감옥으로 사용되던 것을 개조한 건물이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성당 치고는 조금 단조롭고 아담한 편이다.
산 마르틴 광장에서 느낀 '성당에 대한 아쉬움'은 이 사진으로 달래자. '대성당 중 귀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세고비아 대성당이다. 웅장한 고딕 양식과 이슬람 건축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럽의 다른 성당들이 웅장함을 강조하는 남성적인 모습이라면, 세고비아 대성당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아한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시간이 좀 넉넉했다면 성당 내부도 한 번 둘러보고 싶었으나, 저때가 아마 오후 5시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최종 목적지인 알 카사르 내부를 보려면 6시 전에는 입장해야 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고비아 대성당에서 알 카사르로 가는 좁은 골목길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세고비아 기념품 가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바로 '아기돼지'다. 꽃보다 할배에도 등장했던 아기돼지 통구이 요리, '코치니요 아사도'의 영향으로 아기돼지는 세고비아를 대표하는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골목 구석구석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좁은 길이 끝나고 탁 트인 들판이 펼쳐진다.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마을, 세고비아의 분위기는 서울이나 도쿄는 물론 마드리드와도 전혀 딴판이다.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보니, 저 멀리, 세고비아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바라보니까 뭐 그닥 특별해 보이진 않다. 역시, 여성미가 두드러진 건물이라 그런지 가까이서 봐야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나 보다.
이제, 세고비아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백설공주의 성'으로 유명한 알 카사르를 둘러볼 시간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길래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의 모티브가 될 정도인지... 다음번 포스팅에서 한번 확인해 보자!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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